Interview
<인터뷰> 마인드풀컴퍼니 서영지 대표, 오버랩 박정실 실장
패션에서 지속가능은 이제 화두를 넘어 일상이다. 그러나 어떻게 구현해야하는지, 누가 담당해야하는지, 수익적인 측면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해야하는지 잘 아는 기업이 있을까?
현재 국내 패션 기업의 지속가능 실현 방법이라면 누가 만든지 조차 모를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예쁘지도 않은 제품을 만든다. 마케팅 수단이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일회성이다. 문제다.
지속가능의 중심에 있는 패션 업계는 수년째 지속가능성 실현을 외치고 있다. 중요함은 알지만 소비자가 선택할만한 상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서 지속가능을 실현하기 위해 기획 단계부터 재고 원단을 쓰고, 다시 만들어 활용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이처럼 필요성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 패션 업계를 향해 지속가능을 외치고 나선 두 사람이 있다.
마인드풀컴퍼니 서영지 대표와 오버랩 박정실 실장이다. 두 사람은 모두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출신이다. 서 대표는 남성복 시리즈 상품기획 팀장, 박 실장은 업사이클 브랜드 래코드 디자이너였다.
근무 시점이 달라 서로 알지 못했지만 지속가능에 대한 관심이 같아, 서 대표가 사업 방향을 구상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됐다. 이들이 최근 지속가능이라는 하나의 ‘아젠다’를 가지고, 이를 실현해 보겠다며 의기투합했다.
팔릴 만한 제품이어야 한다
둘의 만남은 일종의 협업이다.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만나 패션 기업들이 실현하기 어려운 지속가능 패션을 대행해 주겠다는 기획안을 들고 나섰다.
서영지 대표는 “여러 패션 기업에서의 (실무)경험으로 상품기획 프로세스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현업에 있는 MD나 디자이너들이 지속가능 제품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죠. 그들이 직접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팔다 남은 재고를 활용해 다시 팔릴 만한 제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을 제안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제안하는 업사이클링이란, 디자인이 가미되고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실 지속가능 제품은, 비싼 가격과 볼품없는 디자인, 업사이클 제품인 것처럼 티가 난다.
“재고 원단을 사용해 다시 제품을 만들 경우 2차 재고를 양산하는 방식으로 되어서는 안되요. 다시 만들더라도 상품성이 있고, 기업 입장에서도 수익적으로나 마케팅으로나 활용도가 있는 제품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패션 브랜드라면 누구나 재고가 있다. 3년 이상 넘는 악성 재고는 90% 할인을 해도 팔리지 않고 결국 소각되거나, 땡처리 둘 중 하나다.
버려지는 재고를 다시 신상품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지속가능의 시작이 된다. 한 단계 나아가서는 판매로 이어지고, 다시 활용되는 자원의 순환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원형의 순환구조다. 서영지 대표는 사업을 구상하던 중 지속가능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초반에는 무작정 상품 기획 아웃소싱 비즈니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당장은 힘들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국내 패션 업계는 아직 디자이너의 역할이 필요한 사업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지속가능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면,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해야하는 데 외주 업체로 원활하게 업무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오버랩 박정실 실장(좌), 마인드풀컴퍼니 서영지 대표(우)>
박정실 실장은 지난 해 초 코오롱을 나와 자신의 브랜드 ‘오버랩’을 시작했다. 물론 지속가능 브랜드이다. 박 실장은 서영지 대표를 만나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두 사람은 지난 해 7월 지속가능 제품을 만들어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박정실 실장은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갔다가 수명이 다한 원단은 어떻게 처리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버린다고 하더라구요. 너무 좋은 원단인데 다시 쓰면 좋을 것 같아 받을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주시더라구요(웃음). 별도의 마케팅을 하지 않아 그리 반응이 좋지는 않았지만 이런 시도들이 계속 이뤄져야한다고 봐요.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지속가능이 더욱 구체화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지속가능 실현 도와드립니다
서영지 대표는 “지속가능 상품기획 비즈니스를 제안하는 것이 조금 이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죠. 아직 지속가능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비용의 문제에 부딪히기 때문이죠. 지속가능에 대한 시도가 실제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지 걱정하는 것에서 부터 가로막히기도 해요. 실무자들과 몇 번 상담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서영지 대표는 박정실 실장과 같은 실력 있는 지속가능 디자이너를 물색 중이다. 다양한 아이템의 업사이클링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시너지를 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함이다.
“패션 기업들의 지속가능 실현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들의 남은 재고와 우리의 경험, 디자인력이 만나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박정실 실장은 업사이클링 디자이너다. 브랜드 디자이너와는 작업 방식도 다르고, 디자인적 사고의 시작부터 조금은 차이가 있다.
디자이너들은 머릿속에서 먼저 디자인을 구상하고 밑그림을 그리지만 업사이클링 디자이너들은 그럴 수 없다. 어떤 소재로, 활용해야할지 제품을 보고 판단해야하기 때문이다. 업사이클링 작업은 꽤 많은 공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국내서 이를 소화해낼 수 있는 공장도 제한적인 상황이다.
양산도 가능하다
서영지 대표는 사업을 준비하면서 설문 조사도 진행했다. 업계 관계자와 지인들은 대상으로 지속가능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지속가능 제품은 대부분 디자인 수준이 떨어지고, 비싸다는 의견이 많았다.
“프라이탁 등 지속가능 브랜드가 널리 알려지면서 20~30대 소비자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더라구요. 아이를 키우는 밀레니얼 세대들은 이왕이면 의식 있는 소비를 추구하고, 가치소비 의지를 보였고요.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죠”
대부분 지속가능 제품이라고 하면 맛배기, 보여주기식, 지나가는 마케팅 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량도 많이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들의 실력은 조금 다르다.
어느 정도 양산이 용이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적게는 100개 부터 많게는 500개 까지도 가능하다. 물론 지금은 가방과 같은 잡화 아이템에 한해서지만 규모가 커진다면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다품종 소량 시대인 만큼 백화점 브랜드들도 한 아이템을 500장 이상 만들지는 않는 상황에서 업사이클링 아이템을 500장 이상 만든다면 수익적으로도 괜찮은 수준이다.
우선은 재고를 활용한 잡화부터 시작해 의류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캐주얼이 약한 남성복 브랜드들이나 여성복 브랜드들도 좋은 원단으로 만든 제품이 시즌이 지났다고, 사이즈가 잘못됐다고 기획이 잘못된 제품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것이다.
서영지 대표는 “정말 평소에 입을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 포인트에요. 파타고니아는 오히려 자신들의 브랜드 철학을 담아 더 비싸게 팔기도 하지만 우리는 적정 가격에, 디자인을 충분히 고려한 제품을 만들어 드릴 계획입니다”라고 말했다.
업사이클링 제품이라는 것을 티가 나지 않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조금 의아했지만 마케팅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기획단계 부터 재고 상품이나 소재를 활용해 제품을 만들고 이를 파는 행위만으로도 지속가능이 이뤄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영지 대표와 박정실 실장이 버려진 천막소재를 활용한 제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업사이클링 제품 제안 받아 보기
업체 입장에서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기란 의외로 쉽다. 미팅을 통해 브랜드 콘셉트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고 마케팅으로 활용할 것인지, 스팟 아이템으로 쓸 것인지에 대해 결정한다. 아이템에 대한 밸런스를 조정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의견을 나눈다. 어떤 재고를 어떤 아이템으로 만들어낼지에 대한 것이다. 다음은 브랜드가 가진 재고를 공개한다. 기획자가 물류 창고를 찾아 필요한 제품을 선정하고 다시 디자인해 새 제품을 만들어 낸다. 끝.
제품을 만들지 않고 남은 재고 소재를 제공한다면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도 있다. 재고 원단이 없는 브랜드는 없기 때문이다. 남은 재고 원단으로는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다. 맨투맨, 티셔츠, 가방 등 캐주얼은 물론 창고 구석에 있다가 버려질 원단들이 다시 빛을 보게 된다.
업사이클링 제품을 의류나 가방 등 품목으로 제한하지 않고 소비자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고 갖고 싶은 라이프스타일 굿즈로도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다.
박정실 실장은 “가장 속상한 것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이 단순히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어 버리는거에요. 내가 만든 제품이 잘 사용되어야하는데, 그런 목적이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업체들에게 수익이 되고, 재고를 다시 사용되는 모델을 만들고자 한거에요. 브랜드는 소재를 갖고 있고, 우리는 기획력과 디자인력을 갖고 있으니 뜻만 맞으면 실현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죠”라고 했다.
지속가능 대행업체가 아직 국내에는 없다. 해외에서는 리폼 대행업체나 기업과 연계한 비즈니스 모델이 많지만 국내에는 아직 없다. 없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안 하기엔 실력이 아깝다.
서영지 대표는 “최근 몇 군데 브랜드와 협의를 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고 있어요. 한 소규모 브랜드는 여력이 안 되고, 한 브랜드는 이를 담당해야할 디렉터가 고민 중 인가봐요.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죠. 디자이너들이 지속가능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기도 하죠. 지속가능을 설득해야한다는 것이 한편으론 가장 답답한 부분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패션 기업들은 단순히 제품을 잘 만들고 잘 파는데 만 생각이 미치고 있다. 환경 생각은 뒷전이다. 어떤 기획자들은 업사이클링을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업사이클링 공정은 단계가 두 배로 많다. 해체부터 세탁, 다시 건조해서, 디자인하고 원단을 재단해, 생산 공장에 보내 꿰맨다. 말처럼 단순하면 좋으련만 다시 만드는 일은 쉽지 않음이 확실하다. 서 대표와 박 실장은 브랜드의 니즈를 파악하는 상담부터 시작해 직접 샘플을 만들고 디자인해 제안한다. 일반 브랜드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이다.
“아마 하고는 싶은데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못하는 업체들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좋은 소재로 만든 재고들이 창고에서 자고 있다면 깨워주고 싶네요.”
무조건적인 업사이클링은 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재고로 다시 제품을 만들어봐야 또 재고를 양산하는 것밖에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것은 안 팔렸을 때 얘기고 팔린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디자인도 좋고 심지어 제품이나 소재를 재활용했다면, 또 팔렸다면, 재고는 수익이 되고, 지속가능은 이뤄지게 된다.
<수명이 다 된 패러글라이딩 원단으로 만든 가방 >
재고로 재고를 만들지 않는다
소비자에게 매력있는 제품이어야 업사이클링도 의미가 있다.
박정실 실장은 “어차피 버릴 원단이면 다시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 아닌가요? 하하”
“계절에 따라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시즌 개념이 재고를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하죠. 사람들은 트렌드를 쫓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임에도 촌스러워 졌다며 치워버리고 새 제품을 사니까요. 좋은 가방을 계속 들 수 없도록 새 것을 매번 만들어내는 행위도 문제라고 봅니다.”
패션에 대한 딜레마는 해결책이 없다. 새제품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패션 산업을 위축될 것이고 계속 만들어내자니 지구가 울고, 지속가능을 실현하기 위한 이들의 노력이 어떻게 이뤄져갈지 아직은 미지수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과 노력이 패션 업계가 지속가능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게 도와준다면 절반 이상의 성공일 것이다.
서영지 대표는 “패션 상품이 만들어지기 까지 많은 과정이 있지만 디자이너만 노력해서는 안 되죠. MD도 최대한 재고를 줄일 수 있도록 적절히 발주해야하고, 소재를 만드는 공장도 환경을 생각해야 해요. 그렇게 만들었어도 어쩔 수 없이 재고가 남겠지만 모두 맡은 분야에서 지속가능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업계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출처 : 패션포스트 / www.f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