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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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인식의 달 행사. 핑크를 메인 컬러로 쓰고 있다>

<유방암 인식의 달 행사. 핑크를 메인 컬러로 쓰고 있다>

 

스포츠 의류는 자연스럽게 야외 활동을 기준으로 기획되는 경우가 많고, 선수들을 잘 보이게 하기 위하여, 또는 야외 활동 시 사고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색상을 주로 사용한다.

흔하게 쓰이는 색은 형광 녹색과 형광 주황색이다. 이 두 색상 모두 안전에 관련된 보호 장구나 의류에 많이 쓰이다 보니 왠지 미학적인 느낌이 많이 떨어져 디자이너들이 기피하게 되는 색상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되면서 형광 녹색과 주황을 대체할 만한 High-Visibility 색상으로 핑크색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관습들은 핑크색을 성(性)의 구분 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고, 대표적으로 남아는 블루, 여아는 핑크라는 사고방식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근대에 형성된 습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 역사를 보면 핑크 색이 항상 여성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핑크는 여성의 색이 아니다

18세기 남성복에는 꽃문양(이 시대에선 아주 흔했던)이 수놓아진 핑크 실크 수트가 무척이나 유행했다고 한다. 그 이후 1900년대 초에는 미국의 브룩스브라더스(Brooks Brothers)에서 최초의 핑크색 드레스 셔츠가 나와 대히트를 쳤다.

문제는 이 셔츠가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만든 셔츠였으나 도리어 남학생들에게 더욱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었고, 이 셔츠는 소위 말하는 아이비리그 룩에 아주 잘 어울렸다.

이렇게 남성들이 좋아하고 있는 이 알 수 없는 색을 도대체 누가 ‘여성성’의 대표 색상으로 만들었을까? 아주 강한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히도 의류사업 분야이다. 블루와 핑크는 원래 성별에 따른 색상이 아니다.

60년대와 70년대에 들어서기까지 유아용 의류와 액세서리에는 이 블루와 핑크가 성별과 관계없이 혼용되어 쓰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임신 중 태아의 성별을 구분할 수 있게 되자 의류회사들이 이를 활용하여 성별에 맞춘 의류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색상으로 태아의 성별을 암시해 주기도 하고, 성별에 따른 블루와 핑크 의류를 따로 제작했다. 아이들이 여럿 있는 집에서는 어쩔 수 없이 옷을 따로따로 사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어 매출을 올리는 창조적인 사업을 만들어 냈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고정관념이 생기기 시작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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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를 좋아하면 게이?

핑크색을 좋아하는 여성은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일부에서는 핑크색을 좋아하는 남성은 게이라는 속설이 있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 나치가 LBG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를 뜻함)로 낙인을 찍은 사람들을 범죄자 취급하며 이들을 구분하는 색으로 핑크색 삼각형을 옷에 마킹했는데, 이는 그들이 멋대로 정한 표식이지 개인의 성향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편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남성이 여성적인 성향이나 취향을 보인다고 색안경을 쓸 필요도 없는 일이다.

시대가 바뀌고 1991년 미국에서 열린 뉴욕 유방암 서바이벌 레이스에서 참가자들에게 핑크색 리본이 수여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에 ‘유방암 인식의 달’의 공식적인 상징이 되었고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제 상징이 되었다.

이것이 너무 유명해져서 핑크색이 더욱 여성성을 대표하는 원치 않는 편견을 생산해 낸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처럼 90년대부터 2000년대에 들어서기까지 이 핑크색이 사회적으로 강렬하게 쏟아져 나왔던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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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의 힘

핑크색에는 자체적인 힘이 있다. 이것이 여성만의 힘을 뜻하지는 않는다. 미국 면화협회의 연구 자료를 보면 핑크색을 입는 남성이 다른 색을 입는 남성들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낸다고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연구를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에는 나름의 흥미가 생겼다. 영국 사이클링 의류 브랜드 라파(Rapha)도 핑크색을 브랜드 컬러로 사용하고 있다.

라이딩 시 안전상의 이유로도 그 쓰임새가 좋지만 여기서의 핑크색 역시 힘과 밸런스를 나타낼 뿐이다. 게다가 다른 브랜드에서 흉내 내기 어려울 정도의 고 가시성 핑크와 우아한 핑크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기에 독보적인 브랜딩을 만들어 주고 있다.

세계적인 3대 자전거 대회 중 하나인 지로 디탈리아(Giro d’Italia) 역시 핑크색을 대회 대표 색상으로 쓰고 있다. 이 대회를 ‘핑크 레이스’ 라고도 부른다.

대회의 여러 스테이지 중 각 스테이지가 끝날 때 마다 가장 빠른 선수에게 핑크색 저지(사이클링용 상의)를 수여하는데 이 저지를 말리아 로사(Maglia Rosa)라고 하며 1931년에 도입이 되었다.

무솔리니는 핑크색이 너무 여성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 이탈리아에서 엄청난 인기가 있는 이 대회에 파시스트당 자체가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후문이 있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렇게 마초적인 경기에서 그 많은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핑크색이 쓰이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이 지로 디탈리아 레이스는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Gazzeta dello Sport)’라는 신문사가 1909년 처음 개최하여 이어져 오고 있는데, 이 신문의 종이색이 핑크색이어서 그랬다고 한다.

“회색 신문지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

 

출처 : 패션포스트 / www.f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