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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차를 타고 라디오를 틀면 귀에 쏙쏙 박히는 노래가 있으니 켄드릭 라마의 ‘Humble’이다. 이 노래 가사 중에서도 유난히 귀에 쏙 들어오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I am so sick and tired of the Photoshop’이다.
지난 겨울 한국에 잠깐 다녀왔을 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셀카를 찍는데 아무 앱도 쓰지 않고 그냥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고 핀잔을 들은 이후 스노우(앱)는 내 핸드폰 셀카의 기본 옵션이 되었다.
스노우 앱을 쓰지 않고는 셀카를 찍기 두려운 나이. 당연히 인스타그램에 올라가 있는 사진은 모두 피부과에서 시술이라도 하고 온 듯 잡티 하나 없다.
물론 내 실제 모습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있는 가공된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켄드릭 라마의 ‘Humble’을 들을 때 마다 내 얘기를 하는가 싶어 찔리기도 하고, 내가 팔로우하는 인플루언서의 피드를 보면서 느꼈던 왠지 모를 피로감과 거리감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리고 결론은 항상 ‘그래, 뭐 굳이 포토샵으로 내 본 모습을 바꿀 필요가 있나? 거울로 보는 나와 인스타그램의 내가 다르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뭐 이런 종류의 각성과 자아비판 사이를 오고간다.
이런 감상은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닌가 보다. 요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면 흔한 설정샷 보다는 있는 그대로 날것의 유니크함을 드러내는 피드들이 눈에 띈다.
특히 이런 경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10대 인플루언서들에게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Emma Chamberlain, Jazzy Anne, Joanna Ceddia와 같은 친구들은 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들을 올리는데 거리낌이 없다.
필터를 사용하지도 않고 일부러 정리한 느낌도 없다. 방에서 찍은 셀카에는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이불이 그대로 노출되고, 더블유 매거진과 찍은 화보사진 피드 다음에는 가족 여행 중에 찍은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럽고 심심해하는 주인공의 셀카가 있다.
밀레니얼 인플루언서들이 무거운 DSLR 카메라를 들고 완벽한 컬러의 벽을 찾아 헤맬 때, 그 사진을 완벽하게 보정하기 위한 에디팅 기술을 마스터하는 동안, 그들보다 어린 Z세대는 대부분 휴대폰에서 바로 사진을 찍고 글을 올린다.
인플루언서 마케팅 기관인 Estate Five의 공동 설립자인 Lynsey Eaton는 “이전의 인플루언서들은 자신의 포스팅을 일정한 스타일로 유지하기 위해, 특정 빛에서만 촬영을 하거나 정해진 구도를 추구했지만 이런 규칙은 젊은 세대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레니얼 인플루언서들이 무거운 DSLR 카메라를 들고 완벽한 컬러의 벽을 찾아 헤맬 때, 그 사진을 완벽하게 보정하기 위한 에디팅 기술을 마스터하는 동안, 그들보다 어린 Z세대는 대부분 휴대폰에서 바로 사진을 찍고 글을 올린다.
인플루언서 마케팅 기관인 Estate Five의 공동 설립자인 Lynsey Eaton는 “이전의 인플루언서들은 자신의 포스팅을 일정한 스타일로 유지하기 위해, 특정 빛에서만 촬영을 하거나 정해진 구도를 추구했지만 이런 규칙은 젊은 세대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재정의, 완벽하지 않은 아름다움에 대하여
이러한 경향은 뷰티 업계의 광고에도 이어진다. 사실 이는 SNS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SKINPOSITIVITY #NOFIL TERSKIN이라는 해쉬태그를 통해 여드름, 주근깨, 등 피부결점이라고 생각되던 부분들을 그대로 드러내며,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사랑하고,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2018년 말에는 ‘My Pale Skin’이라는 계정을 운영 중인 뷰티 유튜버 Em Ford의 ‘REDEFINE PRETTY(아름다움의 재정의)’라는 비디오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은 큰 맥락에서 ‘바디 포지티브(Body-Posi tive)’ 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기존에는 바디 포지티브 운동이 플러스 사이즈의 여성에 국한되는 면이 있었다면, 지금은 단순히 사이즈 뿐 아니라, 피부, 인종, 성별, 장애, 생김새 등 보다 광범위한 의미로 확산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존중하자는 가치관의 변화인 셈이다.
최근 구찌가 코스메틱 브랜드를 재론칭하면서 보여 준 광고 캠페인은 이런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구찌 광고에는 다양한 모델의 입이 클로즈업된다.
기존 화장품 광고라면 가지런하고 하얗게 빛나는 치아가 먼저 보여지겠지만, 구찌의 이번 립스틱 광고는 조금 달랐다. 특히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펑크 밴드의 리더, Dani Miller의 클로즈업 사진은 가지런함과는 거리가 먼 자유분방한 치아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가운데 앞니 두개 양 옆으로 치아가 나지 않아 넓은 틈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웃는 모습, 그것도 입 부분만 클로즈업된 광고 사진은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신선하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다가 왔지만,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이 광고를 포스팅한 구찌 인스타그램에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댓글 부대의 설전이 한동안 지속됐지만, 응원과 감동의 댓글이 훨씬 더 많았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이 캠페인에 대해 “그냥 보기에는 낯설 수 있지만, 인간적인 관점에서 가장 현실에 가까운 표현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아이디어였다” 고 말했다.
또 대니 밀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어렸을 적 치아 때문에 놀림을 당했던 이야기와 함께 “나는 이 광고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자신감을 되찾고, 온전히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얼마 전 론칭한 리한나의 Fenty 광고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슈가 되었다. 리한나는 여러 면에서 현재의 이런 흐름을 대변하고 적극적으로 브랜드에 녹여냄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코스메틱, 란제리에 이어 럭셔리 레디 투 웨어 브랜드까지 일관되게 나타나는 그녀의 철학은 ‘Inclusivity(포괄성)’이다. 모든 여성에게서 매력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것을 다양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힘.
이 시대가 원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한다. 이번 Fenty 광고에는 그런 그녀의 철학이 그대로 녹아있다. 모델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사진은 전혀 리터칭이 된 흔적이 없다. 모델의 뺨에 있는 상처 자국이 그대로 드러난다. 있는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다.
이 외에도 2018년, CVS는 자사 매장 내 모든 광고에 포토숍으로 보정된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뷰티 브랜드 어반 디케이도 인스타그램에서 무보정 이미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투애니원의 CL이 모델로 발탁되면서 한국 소비자들에게 더욱 이슈가 됐던 어반 디케이(Urban decay)의 설립 파트너인 웬디 줌니어(Wende Zomnir)는 “과거 미의 기준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 고객들을 위해 ‘Pretty Differen’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르고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뷰티 브랜드가 갖는 의미를 재창조하는 게 우리의 접근법”이라고 말한바 있다.
모델도 마네킨도 바뀐다. 패션계에 부는 다양성의 바람
바디 포지티브 무브먼트가 확대되면서 실제로 속옷 브랜드의 광고 모델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다양한 체형과 다양한 스킨톤의 모델이 등장하고 연령대도 점차 다양해지는 추세이다. 특히 이런 경향은 온라인 DTC브랜드에서 좀 더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미국 여성 소비자의 68% 이상이 사이즈 14(XL) 또는 그 이상이다.
플러스 사이즈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어떻게 과반 수가 넘는 소비자가 스탠다드 범주가 아니라 플러스라는 용어로 정의 됐는지 아이러니하다.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제품 구성에서, 특히 럭셔리 브랜드로 갈수록 플러스 사이즈의 선택폭은 현저히 줄어든다.
프라발 구룽의 경우도 2009년부터 꾸준히 사이즈 22까지 프라이빗 고객에게 제공해 왔지만, 메이저 리테일에서는 14(XL)이상은 아예 바잉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메이저 리테일러 중에서 사이즈 인클루시비티 무브먼트에 앞장서고 있는 곳으로는 타겟(Target)이 있다. 타겟은 지난해까지 플러스 사이즈 옵션을 300개 매장으로 확대했다.
실제로 타겟에 가보면 플러스 사이즈 마네킨이 전면에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노르드스트롬도 지난해부터 30개 매장에서 100개 브랜드에 대해 플러스 사이즈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로다테(Rodarte)와 플러스 사이즈로 유명한 브랜드 유니버설 스탠다드(Universal Standard)의 콜라보레이션 컬렉션이 출시되면서 로다테의 디자인을 사이즈 00~40까지 다양한 고객들이 접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경향은 매장 내 디스플레이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2015년 가디언지가 보도한 것처럼 평균 마네킨의 사이즈는 6피트의 키, 34인치 바스트, 24인치 허리, 34인치 힙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CDC에 따르면 미국 여성 평균 키는 약 5피트 이고 허리둘레는 38인치라고 한다.
현실과 마네킨과의 괴리는 굉장히 크다. 그런데 최근 세계 최대 스포츠의류 브랜드 중 하나인 나이키가 이런 관념을 당당히 깨고 플러스 사이즈 마네킨을 선보여 화제가 되고 있다.
나이키는 모델 Paloma Elsesser, 인플루언서 Grace Victory와 Danielle Vanier 등을 모델로 한 캠페인과 함께 2017년 여성 플러스 사이즈 제품군을 출시한 바 있다. 이후로 지속적으로 플러스 사이즈 상품에 대한 확대를 진행해 왔고, 이번 플러스 사이즈 마네킨을 통해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벗어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새로운 흐름에 앞장서고 있다.
리한나의 펜티 또한 뉴욕 팝업 매장에서 현실감 있는 다양한 사이즈의 마네킨을 선보였다. 리한나는 “우리는 현실을 나타내는 다양한 마네킨들을 보여줌으로써 하우스의 포용적인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살펴본 여러 사례와 같이 미의 기준에 있어 상당히 보수적이었던 패션계에 다양성과 포괄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나타고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고무적이다. 그 동안 패션계는 마르고 키 큰 백인 여자 모델을 이상적인 이미지로 강요해 왔다.
이로 인해 그렇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바디 이미지를 심어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천천히 이러한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한 각성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의미 있는 변화임에 틀림없다.
21, 23호 쿠션 팩트와 55, 66 사이즈로 획일화된 한국의 뷰티와 패션업계는 이러한 전 세계적 흐름에 발 맞춰 어떻게 변화해 갈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출처 : 패션포스트 / www.f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