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계속 갈 길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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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패션에 변화가 꽤 요란하게 이어졌지만 2019년 들어서 약간은 안정감을 찾은 듯하다. 세상의 변화와 함께 자기 몸 긍정주의, 인종 다양성, 문화 다양성 그리고 환경 등등의 이슈들이 어떤 것이 멋진지, 어떤 것이 예쁜지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냈다.

이런 흐름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패션에 대한 태도에 있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더 주목하게 되었다는 게 아닐까 싶다.

이는 몇 가지 경향을 만든다. 예를 들어 하고 싶은 말들을 직접 옷 위에 적어 버리는 시기를 지나친 후, 그런 이념들은 옷 안에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굳이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패션 위크나 광고에서 모델의 선택, 옷의 모습, 소재의 출처 등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전한다.

변화가 지나간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된다는 뜻이고 또한 그런 것들이 결국 자연스럽게 일상에 자리를 잡는다는 의미다.

트렌드를 이끄는 패션

그런가 하면 패션은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끌고 가는 데 있어 탁월한 재주와 많은 노하우가 있다. 그러므로 이런 흐름을 상품화 시킨다. 정치적 메시지, 사회적 메시지 중 거칠고 다루기 어려운 부분은 잘려 나가고 매끈하게 다듬어져 근사한 액세서리가 된다. 즉 ‘나는 이런 걸 지지해’라는 의견 자체가 패션이 된다.

자신의 취향에 그 무엇보다도 집중을 한다면서 비슷한 트렌드의 옷을 따라가고, 결국은 다들 비슷한 옷을 멋지다고 입게 되는 현상은 그러므로 여전하다. 이런 일은 사실 패션에서 매우 흔하다.

청바지가 반항을 상징하던 시대, 펑크의 시대, 보헤미안의 시대 등등 정신을 억압하는 보수적 체제에 대항 하면서 청바지를 입는 시대도 물론 있었고 학교에서 금지한 나라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 와 불의로 가득 찬 기존 체제에 반항을 하겠다며 청바지를 입는 사람은 없다. 조금 더 나아가면 영혼의 자유로움을 찾는다면서 무리를 지어 가죽 모터사이클 재킷을 입거나 똑같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는 식의 간편한 요식 행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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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일률적 ‘개성’ 그렇다고 옷의 근본을 파고들며 고민해 각자의 대안을 만들어 가기엔 덩치가 너무 크고 사실 득도 별로 없다. 그러므로 로고가 프린트 된 몇 백 달러 짜리 티셔츠가 주변에 ‘다양성 기반의 새로운 패셔너블 함’을 알리는 시그널이 되는 방식 역시 계속된다.

유행하는 못생긴 옷과 그냥 못생긴 옷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놓여있다. 이런 건 패션이 유행 기반의 산업으로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다.

또한 사람들이 손에 쥐게 된 SNS라는 세계와의 실시간 연결 고리는 생각하는 방법을 바꿔놓는다. 책을 읽던 시대와 TV를 보던 시대와 같을 수 없다. 그리고 무수한 세상의 취향 속에서 자신을 찾을 수 있게 되었지만, 또한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 지를 더 걱정하게 만들기도 한다.

뭔가 근사하다는 옷을 사 입고 세상에 보여주자 하는 욕망은 모순 안에 놓인다. 이렇게 ‘나만의 개성’이라는 말은 패션 세계에서 일률적으로 정돈 된다.

판매와 구매의 새로운 길

또한 새로운 세대는 가치관, 선택의 방식 뿐만 아니라 구매 패턴과 활용 방식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브랜드들이 실험에 나서고 있다.

H&M은 본국 스웨덴에서 옷을 빌려주는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럭셔리 패션 다음도 대여, 패스트 패션 다음도 대여라는 이야기는 사실 한참 전부터 나오고 있지만 아직 판을 바꿀 정도로 성공한 곳은 없다.

제품을 팔지 않는 체험형 매장도 늘어나고 있다. 어차피 매장은 뭘 살까 둘러보기만 하고 구매는 온라인에서 한다는 데 매장을 커다란 광고판처럼 운영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여러 나라에서 퍼를 금지하면서 변화를 꾀하는 캐나다 구스 같은 브랜드는 본국 캐나다에 체험형 매장을 열었다고 한다.

이런 실험들은 결국 어떤 건 성공하고 어떤 건 실패하겠지만 여기저기 찔러보며 새로운 세대의 구매객들이 어떤 걸 가장 좋아하는지 찾아내는 일은 당분간 계속될 거다.

그리고 변화도 조금씩 만들어진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결국 23년간 이어져 오던 패션쇼를 종료하기로 했다. 실수가 반복되었고, 회사는 개선을 할 생각이 없든지 혹은 자기들이 손에 쥐고 있는 걸 지금의 세상에 적용시킬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든지 그렇다.

이렇게 된 이유엔 여러 가지 가치관이 포함된다. 몸을 조이고 장식물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고, SNS나 온라인 마케팅에 실패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열심히 트렌드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그저 패션 산업 종사자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고 있는데서 멈추지는 않는다. 그런 시대다. 시장이 넓어지면서 새로 유입된 인구가 많다.

그러므로 어딘가 이상한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수는 분명히 늘어나고 있고, 많은 부분을 신경쓰며 옷을 고르는 사람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구석구석까지 취향과 자신의 생활을 반영할 수 있는 여지도 늘어나고 있다. 패션 브랜드들이 모든 걸 다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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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 대한 패션의 생각

패션이 보내는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가 이렇게 살짝 잠잠해진데 비해 환경에 대한 목소리는 굉장히 컸다. 2019년은 아마 환경과 관련된 개선책 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가 아닐까 싶다. 환경과 패션을 연결하는 일은 일부 열렬한 친환경 지지자들의 생각이었지만 범대중적 관심사로 바뀌고 있다.

환경 NGO처럼 움직이는 소수의 환경 친화적 브랜드의 일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브랜드들이 염두에 둬야하는 일로 바뀌고 있다. 한 때는 환경 법안들을 패션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런 말을 할 시기는 이제 지났다.

그렇기 때문에 몇 년 째 계속되고 있는 코펜하겐 패션 서밋 외에도 2019년에는 정상급들의 각종 회의, 회담이 있었고 패션 업계들도 여러 대비책과 결의안을 내놨다.

친환경을 모토로 삼은 브랜드들과 환경과 친숙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대형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선두에 섰다면 이제는 버버리나 프라다, 구찌와 같은 고급 브랜드들도 대책과 실천 방안을 내놓는다.

환경 친화적인 일상복, 명품옷, 고급 제품 등은 생긴 모습을 바꿔놓고 보는 시야, 선택의 기준도 바꿔놓는다. 물론 언제나 그러하듯 친환경이든 재활용이든 가지고 있는 옷을 늘리는 식으로는 뾰족한 수가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대비와 결의는 결국에 가서는 소비 방식의 변화를 유도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가치관, 패션 산업 전반, 판매 방식, 소비 방식 모든 게 바뀌고 있다. 세 번째 자리 숫자가 바뀌는 2020년에는 이런 실험과 도전의 결과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 같다.

누군가 사라지고 누군가 등장하겠지만 결국 패션 산업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답을 내놓고 방향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게 아닐까.

 

출처 : 패션포스트 / www.f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