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액티비즘 시대의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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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인 여러분은 스토리텔러이자 크리에이티브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난 퇴치, 불평등 퇴치, 차별 퇴치 프로젝트를 도와주세요. 인류가 아무도 소외되지 않도록. 우린 글로벌 가난을 종식시킨 첫 세대이자 기후변화를 겪을 마지막 세대입니다.

가난, 불공정, 불평등이 우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어느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모든 국가, 세대, 성(Gender)이 동참해야 하며 특히 민간 기업이 중요합니다. 그저 할 일만 했다는 안도감을 주는 CSR(Corporate Social Resp 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2016년 칸 광고제로 간 UN(국제연합)

지난 2016년 당시 UN 사무총장이었던 반기문 총장이 칸 라이언즈 페스티벌(前 칸 국제광고제) 무대에서 했던 기조연설에 담긴 내용입니다. 아마 제 기억 속에 반 총장의 호소와 촉구는 꽤 긴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저는 여기 매드맨(Mad Men;미국 드라마 제목을 따라 광고인을 일컫는 말)들에게 브리프(Brief;광고인들에게 주어지는 캠페인 주제)를 주러 왔다”며 마치 캠페인 의뢰를 하러 온 광고주처럼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DGs)’의 구체적 실행을 위한 글로벌 캠페인 확산을 호소했었죠.

그와 함께 무대에 섰던 옴니콤, WPP, IPG, 하바스, 덴츠, 퍼블리시스 등 세계 6대 광고 지주회사 회장들은 3천여 명의 크리에이터들 앞에서 SDGs를 주제로 광고 캠페인 확산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죠. 크리에이터들 사이에 당시 이 사건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정확히 3년이 지난 올해 칸 라이언즈의 수상작들의 키워드는 여전히 SDGs입니다. 매년 SDGs를 반영한 캠페인 가운데 수상작으로 당선으로 사례도 늘었고요. 글로벌 기업들의 마케팅과 캠페인에 큰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예 올해는 SDGs 부문이 신설되기도 했습니다.

UN이 말하는 지속가능개발 목표

국제연합(UN)은 지난 2015년 열린 70회 정상회의에서 환경, 경제, 사회통합을 아우르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각국 공통의 목표를 뜻하는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이른바 SDGs를 주창했습니다.

▲빈곤퇴치 ▲기아해소 ▲건강증진과 웰빙 ▲교육의 질 ▲성평등 ▲깨끗한 물과 위생 ▲저렴하고 깨끗한 에너지 ▲경제성장/좋은 일자리 ▲산업 혁신 및 사회기반시설 ▲불평등 감소 ▲지속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 ▲책임감 있는 소비와 생산 ▲기후행동과 해양보존 ▲육상생태계 보호 ▲평화/정의/제도 개선을 위한 파트너십이 SDGs의 목표로 삼고 오는 2030년까지 달성하겠다는 것이 UN의 계획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지속가능성’이라고 하면 친환경에 관한 것에 그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지구, 인류의 생존과 존엄까지 모든 것들을 지속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로 인식하는 것이 더욱 적절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UN이 가장 먼저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광고 캠페인의 크리에이티브 올림픽이, 칸 라이언즈로 향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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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의 ‘빅브라더들’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사회문화 구조적 흐름은 그 뒤를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현업 광고인들과 마케터들의 대부분은 대학 시절 칸 광고제의 수상작들을 보며 미래의 꿈을 키웠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의 벽 앞에서 크리에이티브를 포기하는 경험 또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테지요.

칸 광고제의 상업 ‘예술’이 한국에선 ‘상업’ 예술이 되어야만 했으니 말입니다. 좁은 땅덩어리에 높은 인구밀도에선 TV, 신문, 라디오와 같은 강력한 전파 매체를 통해 유명인을 앞세운 광고 캠페인은 절대적인 광고 효과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재화의 규모의 경쟁까지. 크리에이티브의 힘을 무력화시키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실의 벽 앞에서 ‘크리에이티비티’에 대한 욕망은 브랜드를 위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자책하며 광고주 입맛에 맞는 뻔한 광고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크리에이터로서의 개인적 욕망과 현실 사이에 괴리감을 느끼던 국내 크리에이티브 산업 종사자들에게도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아직은 소수에 그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국내 광고계, 브랜드 액티비즘 시대 맞아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칸 국제광고제)의 주요 세미나와 수상작들을 상영하고 국내 크리에이티비티산업 인사들의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칸 라이언즈 X 서울’ 페스티벌에선 올해 처음으로 SDGs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포럼의 시작은 3년 전 반기문 총장의 6분여짜리 기조연설의 재상영이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24회째를 맞는 ‘칸 라이언즈X서울’의 이번 주제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다양성(Diversity), 접근성(Accessibility)’이었습니다. 이는 지난 6월 프랑스 칸에서 개최된 칸 라이언즈에서 화제가 된 세미나와 수상작들의 3대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느 해보다 월등하게 많은 국내 업계 관계자들의 참석입니다.

아직은 생소한 SDGs 키워드는 한국정서상 순식간에 언론을 도배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기술혁명의 물결을 타고 이미 사회 곳곳에 그 세를 조용히 넓혀가고 있는 UN의 접근방식을 민간기업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편에선 이른바 ‘착한 캠페인’에 대해 피로감을 벌써부터 이야기합니다.

이윤 창출이 목적인 기업들이 활동이 근본부터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업들이 소비자들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돈을 쓸 때만 착한 일을 한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말하면 이제 소비자들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선한 행동을 ‘쿨’하게 보여주는 브랜드를 지지하는 것이 ‘쿨’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죠. 그것도 아주 엄격한 잣대로 말이죠.

그럼에도 기업이 선해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강력한 리더십과 내부 이해 관계자들 간의 집단지성을 바탕으로 한 확고한 신념과 과감한 의사결정이 필요합니다. 착한 기업 마케팅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사례는 말과 행동의 불일치이기 때문입니다.

소비자의 구매를 직접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행동으로 옮기며 동참을 유도하며 팬덤을 확산시키는 이른바 ‘브랜드 액티비즘’ 현상이 부각되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이는 지금까지 거대한 경제체제와 자본주의하에서 일어난 수많은 문제점이 발견된 이후 기업의 용기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일 것입니다. 이는 진정성 없는 얄팍한 상술이나 선심성, 호혜적으로 이뤄졌던 CSR 활동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맥락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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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적은 P&G가 아닌 기후변화와 빈곤”

앨런 조프(Alan Jope) 유니레버 CEO는 이번 칸 라이언스 강연에서 “우리의 적은 P&G가 아닌 기후변화와 빈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앞으로 창업자의 정신이 브랜드를 차별화하고 창업자의 사고방식이 성공을 좌우하는 것을 간파한 행보인 것으로 읽혀집니다.

키스워드 유니레버의 CMO는 브랜드의 미래를 ‘Iⁿ’으로 정의 내렸습니다. 이는 개인 영향력 효과를 뜻하는 ‘I’를 여러 번 곱할수록 브랜드의 파워는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앨런 조프가 말했던 창업자와 그의 철학과 정신을 인지하고 있는 브랜드를 움직이는 모든 구성원들의 사고방식과 진정성, 영향력 또한 중요해진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지요. 부서와 상관이 없거나, 신입 사원이라도 외부 채널에서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브랜드’로서 인격체를 갖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각 구성원은 개인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가상의 페르소나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대표적인 실존주의 사상가인 샤르트르는 앙가주망(engagement)하라고 제시한 답입니다. 앙가주망이란 지식인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뜻하는 말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모든 행동과 선택은 자유입니다.

‘무엇을 할까?’라든지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의사 결정에 개인과 기업은 스스로 선택할 권리와 책임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은 자본주의식 화법으로 말이죠. 실제 칸 라이언즈 페스티벌에서도 크리에이티브의 영향력을 증명하기 위한 다양한 정량적 평가를 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해마다 SNS를 통해 실제 반응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데이터로 평가하니까요. 어워즈 수상작 역시 사회적 확산의 규모를 산정하고 수치로 정량화해서 증명을 해야만 선정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광고주의 상품이 팔려야 하고 팔리니까 말이죠.

 

출처 : 패션포스트 / www.f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