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팔지 않는 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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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이 유락초점의 신발매장, 이곳에서는 신발을 팔지 않는다. 3D 프린터로 발 사이즈를 측정하는 등 체험을 목적으로 한다>

<마루이 유락초점의 신발매장, 이곳에서는 신발을 팔지 않는다. 3D 프린터로 발 사이즈를 측정하는 등 체험을 목적으로 한다>

최근 일본의 신문 기사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물건을 팔지 않는 점포’라는 용어다.

오프라인 유통이 고전하고 있는 것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일본의 다양한 오프라인 유통 채널 중에서도 백화점의 실적 악화가 가장 눈에 띈다.

전성기였던 1990년 약 10조 엔 규모까지 성장하였던 백화점 매출은 2018년에는 전성기의 거의 절반 수준인 5.8조 엔으로 하락했고, 지방에는 폐점하는 백화점들이 속출하고 있다. 무언가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시기인 것이다.

일본 백화점 중 가장 급격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곳은 마루이 백화점이다. 마루이는 ‘물건을 팔지 않는 점포’라는 콘셉트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다. 물건을 팔지 않는 점포란 의류나 잡화 등과 같은 물건 판매를 주 수익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가 매출의 중심축이 되는 점포를 의미한다.

마루이 백화점의 변신은 소비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시작됐다. 마루이는 브랜드로부터 직접 제품을 구입해 소비자에게 파는 방식으로 백화점을 운영했다.

그러나 2015년부터는 제품을 구입해 재고를 직접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에 마루이의 공간을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는 방식(SC형, 쇼핑센터형)으로 운영 방식을 변화시켰다.

즉, 물건을 가져와서 마진을 남기고 손님에게 파는 소매업의 정의에 충실했던 마루이가 공간을 임대하는 임대업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꾼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제품이 아닌 서비스로 공간을 채우는 움직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식음 서비스이다. 마루이 키타센쥬점은 지하철역과 이어지는 접근성이 가장 좋은 층을 가득 메우던 잡화점을 푸드코드로 바꾸었다.

&lt;마루이 백화점&gt;

<마루이 백화점>

‘모여서 먹고 이야기해요.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슬로건처럼 마루이는 소비자들이 마루이에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기를 바란다. 쉐어오피스를 유치한 마루이 점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루이는 소비자가 물건을 사지 않아도 좋으니 마루이에 와서 와코무 펜을 만져보고, 온라인으로 가방을 빌리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경험해보고, 식사를 하면서, 때론 업무를 보면서 마루이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것이다.

판매촉진 아닌 방문 촉진

마루이의 아오이 히로시 사장은 앞으로 ‘팔지 않는 점포’를 지향해 갈 것이라고 말한다. 쉐어링 서비스나 Product as a Service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마루이 점포를 채워나가 물건이 아닌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매출의 비중을 2023년까지 30% 이상으로 올릴 계획임을 밝혔다.

실제로 마루이 매출에서 의류가 차지하던 비중은 53%, 식음료와 같은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14%였지만, 최근 의류의 매출 비중이 31%, 음료 및 서비스 비중이 29%로 두 부문에서 발생하는 매출 비중이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이르렀다.

마루이의 움직임을 보면서 오프라인 유통이 가야 할 길에 대한 두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마루이는 오프라인 매장을 ‘판매장소’가 아닌 ‘공간’으로 해석하고 있다.

마루이가 비즈니스 모델을 ‘소매업’에서 ‘임대업’으로 변화시킨 것도, 물건을 파는 매장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 시간을 보내고, 체험을 할 수 있는 서비스업을 늘리는 것도 매장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판매장소 아닌 공간으로 해석

저가격과 편리함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빠르게 확장하는 온라인에 대항하기 위해서 ‘물건을 파는 곳’이라는 기존의 백화점 콘셉트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또한 마루이는 온라인 업체들을 자신들의 공간으로 초대하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상생하는 모델을 만들고 있다. 마루이 측에서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서비스를 마루이에서 만나게 함으로써 고객의 방문을 촉진할 수 있고, 온라인 측에서는 평소에는 직접 만날 수 없던 소비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오프라인 유통은 이제 얼마나 많이 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불러들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물건을 팔지 않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출처 : 패션포스트 / www.f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