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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헌법 제 1조 같은 통념이 자리하고 있다. ‘매출이 인격’ 이란 말이다. 이 말에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잘 팔면 된다’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패션은 예술인가? 상업인가?
예술과 상업의 줄타기를 잘하는 브랜드야말로 늘 승자였다. 잘 팔리는 브랜드는 늘 먹잇감이자 카피의 대상이다.
우리나라에서 3초 백, 5초 백이라 불리는 루이비통이나 프라다 가방은 그 명성만큼 특A급이라 불리는 미러급 가품도 많다. 하지만 지금 말하려는 것은 단순 카피 제품에 대한 게 아니다. 가품은 명백한 불법이므로 법적 책임을 물어 처벌하면 된다.
문제는 남의 창작물을 교묘히 베껴 상업적 이익을 위해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데 있다. 버버리는 2011~2013년까지 국내에서 10여 건의 체크무늬 관련 민사소송을 제기, 대부분 소송 사건에서 상표권 침해를 인정받았다. 2013년에는 LF(옛 LG패션)의 ‘닥스’와 속옷업체 쌍방울이 피소당한 바 있다.
버버리는 2013년 2월 LG패션을 상대로 ‘버버리 체크무늬’를 사용한 셔츠 제조 판매 금지와 ‘5000만원 배상’을 요청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그해 10월 강제조정을 통해 버버리의 제조 판매 중단 요구를 철회하도록 했다. 법원은 LF에 대해 버버리가 청구한 5000만 원 중 일부를 지급하도록 결정했고, LF 역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사건은 종결된 바 있다.
그 이후에는 버버리와 쌍방울의 소송전이 벌어졌다. 버버리는 쌍방울 트라이(TRY) 브랜드의 속옷 제품이 자사의 ‘버버리 체크무늬’를 도용한 것으로 판단, 상표권 침해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버버리 제품으로 혼동할 가능성이 크다”며 쌍방울에게 버버리에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쌍방울은 벌금을 내고 항소를 포기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 2006년에는 제일모직의 캐주얼 브랜드 ‘빈폴’과 버버리의 소송이 진행됐던 적이 있는데, ‘빈폴’이 한국 전통 창살무늬에 착안해 만든 디자인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소송에서 이겼다.
사실 디자인 카피 문제는 럭셔리브랜드와 패스트패션 간에 가장 빈번히 일어나지만 요즘에는 명품디자이너들이 독립디자이너의 창작물을 표절하는 사례나 패스트패션 브랜드간의 표절 역시 늘어나고 있다.
명품의 스몰 브랜드 카피 문제
2017년에는 H&M이 구찌 제품 다수를 카피해 논란이 되었는가 하면 당사자 구찌가 독립디자이너 대퍼 단의 옷과 비슷한 디자인을 선보여 아이디어 도용 문제에 휘말렸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디자이너 슈즈브랜드 모던 알케미스트 역시 디자이너 브랜드로 업사이클링 패션과 가방으로 알려진 얼킨의 콜라보 제품이 국내 중견 업체에 의해 표절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처럼 고질적인 패션업계의 디자인카피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첫 번째로 패션산업 특성상 디자이너들의 디자인특허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한다는데 있다.
현재 디자인저작권법의 시스템으로서는 출원서 작성부터 등록 허가를 받기까지 6개월에서 1년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약 10단계의 심사를 거치는데, 1년에도 수차례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는 패션업계에는 비효율적인 명목상의 절차일 뿐이다.
디자인을 도용하는 일은 엄연한 범죄이다. 그것이 아무리 법적으로 밝혀내기 어렵다해도 아이디어를 훔친 본인은 잘 알 것이다.
디자인 카피를 대하는 소비자들의 자세
스스로 자존심을 지키고 남의 디자인을 도용하는 것도 범죄임을 의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의 자세’이다. 카피 상품은 한마디로 절도라는 걸 인식하고 남이 훔친 물건을 쓰지 않겠다는 자세, 즉 카피 상품을 구입하지 않아야한다. 소비자가 외면하면 카피상품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한편 민주주의 서울에서는 지난 11월 5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패션 관계자 및 전문가 정책간담회를 열고 ‘패션계 표절 분쟁 해결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패션계 표절 분쟁 해결을 위한 간담회를 연 바 있으며 현재 온라인에서도 시민들의 의견을 묻고 있다.
디자이너들에게 ‘디자인’이란 하나의 물건이나 지적 재산권 정도의 수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창조는 하루아침에 튀어나와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특히 디자이너에게 있어 상품개발은 보이지 않는 연구와 노력의 결실이다.
디자인 도용, 남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일은 도덕적 해이가 만든 범죄다. 만들지도 말아야겠지만, 사지 않고 쓰지 않을 때 성숙한 소비문화가 정착될 것임은 물론 디자인 강국으로 성장하는데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출처 : 패션포스트 / www.f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