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문화공간 낡음에 감성이 더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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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도 수명이 있다. 오래되어 방치된 공간이 그 쓰임새를 잃으면 아무도 찾지 않아 자리만 차지한 채 도시를 황폐하게 만든다. 1960년대 지역의 동력이 된 수많은 공업단지들이 새로운 산업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노후화되면서 남겨진 공장과 건물 그리고 빈 공간들은 그 기능과 용도를 잃어, 처지 곤란의 애물단지가 되버리고 말았다.

오랜 시간 지역을 지킨 건축물은 도시와 인류의 역사이며 시대를 반영하는 산물이다. 격동적인 산업화 이후 세월을 견디다 낡아버리고 수명을 다한 이들 공간들이 현대 감각을 더한 공간으로 재탄생하면서 공간재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공간재생이 화두로 떠올랐다. 공간재생은 단순히 낡은 건물을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에 머물렀던 역사와 스토리를 새로운 가치로 제안하는 것이 공간재생의 핵심이다.

낡아서 사람들이 외면하며 기능을 잃은 공간들이 이제는 새로운 콘텐츠로 스토리를 만들고, 시간이 충전된 공간들은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주목을 받고 있다.

유럽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빨랐던 만큼 우리보다 30~40년 앞서 공간재생을 시작했다. 지역이 갖는 물리적 환경과 자원기반을 유지하며 성공한 여러 사례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건축과 지역의 가치를 부각하는 공간재생의 성공사례가 진행되고 있다.

영국 템즈 강변에 ‘뱅크사이드’라는 화력발전소 건물을 이용한 현대 미술관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은 유럽의 대표적인 공간재생 사례이며 한국에서도 ‘당인리 발전소’의 사후 이용 사업을 영국의 테이트 모던과 비교하며 진행했다.

영화 해리포터, 마법학교에서 ‘호그와트’ 기차역으로 등장했던 런던북부 킹스크로스역이 최근 공간재생으로 문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는데 특히 삼성전자의 브랜드 쇼케이스 ‘삼성 킹스크로스(samsung KX)가 새로운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공간재생으로 새로운 장소성과 현대적인 감성을 연결하는 지역이 많아졌다. 공간재생을 널리 알린 1세대는 2009년에 오픈한 앤트러사이트 합정점이다.

<앤트러사이트>

<앤트러사이트>

남겨진 곳에 감성을 담은 앤트러사이트 합정점

1960년대에 지어진 공장을 카페와 로스팅 공간, 갤러리 등으로 구성된 복합문화 공간으로 재생한 앤트러사이트 합정점. 국내최초 당인리 화력발전소의 에너지 자원이었던 무연탄의 단어인 앤트러사이트(anthracite)를 카페 이름으로 정했다.

70년대 신발공장을 재생한 이곳은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 돋보이는 카페로 커다란 철문을 여는 순간, 탁 트인 공간과 함께 컨베이어 벨트를 인테리어 집기로 사용한 전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공간 안은 편안함을 주는 조명의 조도와 문화 콘텐츠 전개, 여유롭게 배치한 테이블 그리고 요소요소 감성을 자아내는 오래된 것들의 남겨짐이 느낀다.

앤트러사이트 합정점과 제주점에 이어 공간재생의 성공 사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서울 성수동이다. 성수동은 현재까지도 지키고 있는 구두공방은 물론 산업공장들이 밀집된 지역이다.

성수동을 트렌디한 지역으로 이끌며 공간재생의 새로움을 널리 퍼지게 한 ‘대림창고’와 함께 골목골목마다 익숙하지만 낯설고 하지만 새로운 공간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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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창고>

정미소에서 문화 공간으로 변신한 대림창고

성수동을 방문했던 어느 날 대림창고를 찾으러 갔다가 바로 앞에 두고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만큼 투박하고 낡은 외관이었기에 카페라는 것을 인지 못했던 것이다. 거대한 목재 출입문을 통과하면 큰 조형물과 천정에서 떨어지는 자연광이 신비로움을 준 이 공간은, 1970년대 정미소를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을 시켜 성수동을 투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대림창고는 패션쇼무대, 공연장이었으며 파티장과 콘퍼런스로 활용했던 공간이 그림과 차, 음식이 더해지고 낡음에 새로운 감각을 입힌 공간에서 향긋한 커피와 감성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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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언>

공장과 정비소 사이의 어니언 성수점

이곳의 첫 느낌은 ‘여기 카페 맞아! 베이커리도 있어?’ 주변은 온통 공장과 정비소들뿐이고 세련미도 전혀 없으며 오히려 너무 낡아서 과연 F&B 공간으로 적당한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1970년대 지어진 후 금속 부품 공장이었던 건물이 카페로 변신했다. 낡은 건물외관에 ‘신일금속’이라는 상호를 그대로 유지한 철문은 이곳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고스란히 담아 방문자에게 특별한 공간이라는 것을 전달한다.

외관은 물론 내부도 당장 허물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벽이나 바닥의 거친 텍스쳐들은 낡음과 함께 긴 시간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건물과 건물을 잇는 구간과 미로 같은 공간 구조도 독특하다. 이곳에 방문한다면 향긋한 커피와 판매되는 베이커리 특히 팡도르는 꼭 먹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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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연방>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성수연방

분홍빛 기둥이 공간의 조형적 미와 균형을 이루는 성수연방은 각자의 분야에서 특별한 개성과 능력, 이야기를 가진 구성원들이 모인 공간 ‘생활 문화 소사이어티 플랫폼’이다.

라이프스타일 숍 띵굴, 큐레이팅 서점 아크앤북, 3층 천상가옥 카페와 다채로운 F&B 매장들을 구성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부각되고 있다. 성수연방의 베스트 공간은 시즌별 매력적인 테마를 보여주는 파빌리온의 연출공간으로 근사한 사진 한 장을 담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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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성수>

3천 개 뷰티 제품을 경험할 수 있는 아모레성수

자동차 정비소를 새로운 감각으로 오픈한 아모레성수, 아모레퍼시픽 30개의 브랜드제품을 마음껏 체험할 수 있는 뷰티 라운지 공간이다. 고객중심을 극대화한 이곳 공간은 크게 ‘뷰티라이브러리’, 화장품을 마음껏 체험할 수 있는 ‘가든 라운지’, 시그니처 아이템인 성수토너를 판매하는 ‘성수마켓’ 그리고 ‘플라워마켓’과 휴식공간으로 제안한 ‘성수가든’과 ‘오설록카페’로 나뉜다.

입구부터 클렌징 제품을 체험하는 여러 개의 부스가 브랜드 체험 공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부 공간은 자동차 정비소라는 과거의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어 개인적으론 조금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날것의 건축 결을 그대로 노출하기보다는 콘크리트 속 빛, 정원의 부드러운 공간인 성수가든의 편안함과 뉴트로의 감성공간 그리고 한 장소에서 다양한 뷰티 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공간재생은 지속가능한가?

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인위적으로 벽을 긁어내고 허물며 오래된 낡음을 재현한 리뉴얼한 매장들을 보게 된다. 최근 공간재생으로, ‘인스타 성지’로, 극적인 공간으로 변신하다 보니 의도적으로 가공된 낡음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그곳은 역사도 없고 스토리를 공감할 수 있는 DNA가 없다. 공간재생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축의 일부를 과거와 현재에 공간이 가진 맥락을 살리며 건강한 상생의 가치로 의미가 있을 때, 복구의 힘을 가지며 지역의 활성과 사회의 가치를 바꾸게 하는 지속가능한 공간이 된다.

 

출처 : 패션포스트 / www.f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