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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 와인이 뜨겁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맛집에서는 내추럴 와인을 내는 곳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내추럴 와인을 이렇게 마셨을까 싶을 정도로 세상의 와인 트렌드가 한꺼번에 바뀌어 버린 느낌이다. 이미 외식 트렌드에 밝은 분들이라면 최근의 내추럴 와인 유행을 즐기고 계신 분들도 많을 것이다.
필자의 첫 내추럴 와인 경험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처음 마신 와인이 하필 레드였고, 그 중에서도 악명 높은 특정한 향을 가진 와인이었다. 내추럴 와인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독특한 냄새가 나는데, 레드의 경우 흔히 두엄냄새라고 하는 꿈꿈한 냄새가 나는 와인이 종종 있다.
아마 지금 내추럴을 즐기시는 분들 중에서도 그 첫 만남이 반드시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분들도 꽤 되시리라. 처음에는 분명 ‘부쇼네’-상한 와인을 뜻하는 프랑스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화이트는 레드에 비해 그런 향이 덜한 것이 대부분이고 일반적 기준으로도 매우 향기롭고 맛있는 와인이 많다. 아마 화이트를 처음 마셔보았다면 조금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불쾌한 첫 경험을 뒤로 하고 조금 더 내추럴의 세계를 헤매어 보니 이게 제법 매력적인 와인이라는 사실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아직 내추럴 와인이 무엇인지 생소하신 분들도 꽤 되실 터. 그게 오가닉 와인이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을 꽤 많이 만나봤고, 나 자신도 그게 뭔지 궁금해서 최근 1여 년간 내추럴 와인을 집중적으로 마시고 있다.
내추럴 와인을 정의하는 공식적이고 법적인 정의는 아직 없다. 그러나 현재까지 알려진 최소한의 기준은, 유기농법에 준하여 재배한 포도를 사용해 자연효모로 발효시키고, 와인을 만들 때 아무 것도 첨가하지 않고 아무 것도 빼지 않은 와인이라고 한다.
보존재로 쓰는 이산화황은 넣지 않거나 아주 소량 첨가한다. 내추럴 와인의 반대말은 컨벤셔널 와인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그동안 마셔온 와인을 뜻한다.
천차만별개성만점
내추럴 와인을 마시게 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컨벤셔널 와인은 사실 엄청나게 기술적인 통제 하에 생산된다. 현재 생산되는 와인에는 400종 이상의 화학물질과 배양 효모를 쓰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된다. 와인 생산자는 특정한 맛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를 넣거나 빼거나 알콜 도수를 조정할 수가 있다는 뜻이다. 최근의 발달된 양조 기술로 생산된 와인은 마치 공산품 같다. 특정 지역의 특정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특정한 맛이 난다.
반면 내추럴 와인은 살아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생막걸리 같기도 하다. 포도 자체가 가진 자연 효모로 발효시켜서 그대로 얻어진 와인을 마신다. 어떤 내추럴 와인은 오래 보존할 수 있지만 어떤 내추럴 와인은 병 안에서 빠르게 맛이 변한다. 같은 품종으로 만든 와인도 생산자에 따라 개성이 천차만별이다. 어쩌면 떼루아-포도가 생산되는 땅의 환경이 미치는 와인의 풍미-는 오히려 내추럴 와인이 더 많이 가지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인류가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8,000년 전부터 1900년도 중반까지도 와인 생산자는 이렇게 와인을 만들었다. 1900년 중·후반 이후로 대량 생산을 위해 여러 가지 화학 물질과 통제 기술이 집중적으로 사용됐다. 1980년경 프랑스에서 다시 예전 방식대로 와인을 만들자는 운동이 조금씩 확산되었고,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내추럴 와인이 이렇게 핫한가? 외국에서도 이 이슈는 분명 뜨거운 감자인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내추럴 와인이 빠르게 퍼지고 있는 기분이다. 전세계 와인 생산량의 1% 밖에 되지 않는다는 물량이 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레스토랑에 가서 와인 리스트를 펼쳐보았을 때 컨벤셔널 와인뿐이라면 왠지 고루하다는 느낌조차 들 정도다. 내추럴 와인과 신상 핫플 맛집은 서로 필요충분조건이 돼버렸다.
그냥 즐겨라
내추럴 와인의 인기는 인스타그램과 20대 여성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일까. 내추럴 와인은 고루하지 않다. 패셔너블하다. 트렌디하다. 컨벤셔널 와인이 가진 딱딱하고 머리 아픈 지식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냥 느낌 따라서 주문하면 된다. 맛있으면 맛있다, 맛없으면 맛이 없다고 해도 된다. 새롭게 태어나는 시장이라 힙하다.
라벨들은 어찌나 그리 개성적이고 인스타그래머블한지. 어떤 라벨 디자인은 생산자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파격적인 것들도 있다. 가격이 컨벤셔널 데일리 와인처럼 싸진 않지만, 말도 안 되게 비싼 와인도 없다. 외식 업장 가격 기준으로 십만 원이면 맛있는 와인이 드글드글하다.
생산량이 워낙 적어서 찾아 마시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추럴 와인 업계에서 ‘유니콘’이라고 하면 맛있다고 소문이 났지만 유통량이 워낙 적어 찾아볼 수가 없는 와인을 뜻한다.
내추럴 와인은 숙취가 없다는 것이 세간에 퍼진 내추럴 와인에 대한 가장 큰 도시전설이 아닐까 하는데,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애석하게도 절대 그렇지 않다. 내추럴 와인도 많이 마시면 다음날 힘들다.
아직 한참 피어나기 시작하는 종류의 시장이라 이것 말고도 수많은 카더라 통신과 편 가르기와 허세가 난무하는 것이 내추럴 와인인 거 같다. 컨벤셔널 와인 애호가들 중에서는 아직 내추럴 와인에 고개를 갸웃거리시는 분들도 있다.
누군가 내추럴 와인을 접하는 방법에 대해 물어본다면 “그냥 받아들이고 즐겨보자!”고 말하고 싶다. 트렌디하지 못한 사람으로 비추어질까봐 내추럴 와인의 역한 향을 참을 필요도 없고, 또 내추럴 와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강요할 필요도 없다. 마셔보고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몫일 터이다.
단지 이 트렌드는 상당히 매력적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버질 아블로가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는 날이 올지 90년도에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앞으로 큰 줄기가 될 트렌드를 새싹부터 즐기는 행운의 한 가운데 있을지도 모르니까.
출처 : 패션포스트 / www.f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