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투자에 대한 고정 관념의 변화
VC는 물론 중견 기업들도 투자에 참여
론칭해서 브랜드 키우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
투자자들에게 패션은 투자 기피 산업 중 하나이다. 투자해도 언제 원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 가늠이 어렵기 때문이다. 투자 금액도 만만치 않다. 한두 푼 투자해서는 도움도 안 될 뿐더러 받는 이도 탐탁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패션은 주기가 길다. 한번 제품을 만들어 손익을 내려면 최소한 1년은 한 바퀴 돌아야 한다. 더 오래 걸릴 지도 모른다. 촌각을 다투는 투자자들에게 패션 산업의 이 같은 특성은, 투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가 된다.
한 VC 업계 투자자는 “패션에 투자 하겠다는 투자자들은 거의 없죠.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IT나 플랫폼 등 미래 지향적인 사업에 투자하는 추세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말하던 투자자들의 생각은 작년을 기점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 패션도 돈이 되는 투자처가 되어 가고 있다. 속도 전쟁을 방불케 하는 온라인 브랜드들의 세상이 되면서 빠르게 매출을 올리고 투자금도 빠르게 회수된다.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거대 플랫폼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평가받고, 그에 상응하는 투자를 받고 있다.
알게 모르게 패션 기업들과 브랜드들은 VC들로부터 투자를 받고 있다. 가능성을 보여주면 사업 시작과 성장, 지속가능을 위한 투자금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패션 기업들의 투자가 보태지고 있다. 투자사들이 아니어도 투자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돈 잘 버는 중견 이상 기업들은 좋은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다. 론칭해서 돈을 벌기보다 가능성있는 브랜드에 투자하고,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패션 산업의 투자 구도가 바뀌고 있다.
패션과 자본의 결합
최근 패션 마켓의 이슈는 패션과 자본의 결합으로 집중된다.
젊은 콘텐츠 플랫폼 뿐 아니라 패션 기업에 이르기까지 거대 자본의 펀드사나 투자자들이 유입되면서 패션 비즈니스가 새로운 형태로 진화되고 있다.
무신사가 세계 최대 VC 세쿼이아캐피탈로부터 2천억원 규모의 투자유치에 성공하며, 유니콘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플랫폼 스타일쉐어, 애슬레져 안다르와 뮬란 등도 외부 투자 유치에 성공, 사업 확장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국내 패션 벤처들이 빠른 매출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투자 업계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벤처캐피탈이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패션 벤처들에게 적극적인 투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무신사 파트너스 서승완 부사장은 “최근 패션 플랫폼과 벤처기업들에 외부 투자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자본의 움직임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과거 IT, 바이오 등에 집약됐던 투자자들이 최근 소비재 마켓, 특히 패션이 회수가 가능한 시장이라고 여기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배럴, 토박스코리아의 IPO 성공과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패션 기업들의 고속 성장은 투자자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다”라고 말했다.
패션 업계에 외부 투자 유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투자 받은 벤처기업들의 자금 회수도 빠르게 진행되는 모습에 자극을 받자 국내 패션유통 기업들도 적지 않은 변화의 바람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론칭보다 투자
물론 최근 패션 벤처 및 스타트업이 급부상하고 있고 외부 자금이 유입되고 있으나, 패션 기업과 스타트업이 자본으로 연결되어 사업화되는 경우는 드물다. 기존 패션 기업들은 좋은 콘텐츠에 투자하기보다 ‘인수’나 ‘소유’라는 접근 방식을 우선시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종전과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패션업체들이 스타트업과 손잡고 사업 다각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경기 불황과 인프라 부족 등으로 신규 사업을 추진하기 보다는 스몰 브랜드에 투자하는 사례가 패션 유통업계에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즉 유망 벤처기업과 손잡고 시너지를 내려는 움직임이 활발해 졌다.
업계 관계자는 “손쉽고 안전하게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규 브랜드 출시에 최소 50~60억원이 소요되고 준비 기간도 만만찮다. 물론 성공을 장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기존 인프라로는 젊은 감성을 충족시키기가 어렵다. 즉 스타트업이나 벤처투자와의 협력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명화학에서 비롯된 벤처패션 투자
이 같은 투자의 대표적인 사례는 단연 대명화학을 꼽을 수 있다. 권오일 회장이 이끄는 대명화학은 패션플러스, 모다아울렛, 코웰패션, 케이브랜즈 등 대형 패션유통 기업의 인수를 발판삼아 스트리트 패션, 온라인 브랜드 등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피스워커를 전개하는 PWD부터 키르시, 오아이오아이, 비바스튜디오, LMC는 물론 최근 지분을 확보한 유니폼브릿지에 이르기 까지 줄잡아 20여개 이상의 기업에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패션플랫폼을 통해 ‘내셔널지오그래픽’을 전개하는 더네이쳐홀딩스에도 20억원의 금액이 투자됐고. 코웰패션은 석정혜 디자이너가 만든 핸드백 ‘분크’에 90억원을 투자했다.
가장 최근에는 슈즈멀티숍 ‘에스마켓’을 전개 중인 메가슈플렉스 에스마켓코리아의 지분 60%를 인수하며 슈즈 멀티숍을 계열사로 확보했다.
기업들의 인수는 회사를 소유한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대명으로 인수된 업체들은 회사명도 직원들도 모두 그대로다. 대표를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경영권도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기본이다. 경영권을 지켜주면서 순수한 지분 투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 대명은 이렇게 국내 패션시장의 대형 투자 기업으로 부상했다.
대규모 투자 유치를 통해 유니콘 기업으로 등재된 무신사 역시 투자라면 대명화학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무신사는 자금 수혈 파트를 전담하고 있는 무신사파트너스에서 투자 및 인수 사업도 별도로 진행하고 있다. 현재 무신사스토어에 입점된 온라인 브랜드를 포함 10여 곳 이상에 지분 투자가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커버낫’이다. ‘커버낫’은 스트리트 캐주얼의 1등 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 무신사의 지분 투자가 큰 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내셔널지오그래픽’을 전개 중인 네이쳐홀딩스에 VC최대 투자 금액인 20억 원을 투자했으며 최근에는 에프앤에프와 무신사파트너스가 공동으로 각각 10억원의 금액을 ‘안다르’에 투자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돈을 벌기 위한 투자보다는 무신사스토어에 입점한 브랜드들의 내부적 성장을 도모하는 차원이 크다. 대명화학과 달리 경영권을 확보에 필요한 지분 인수가 아닌 VC 최대 금액인 20억원 미만에서 투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도 투자 나선다
그동안 패션 업계에 투자가 미흡했던 대기업들도 온라인과 스트리트 브랜드들에 적극적인 투자를 펼치고 있는 대명화학, 무신사 등에 자극을 받아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는 상호 시너지를 얻기 위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는 최근 온라인 기반의 2개 스트리트 브랜드에 투자했다.
이미 1개 브랜드는 인수 계약이 완료된 상태로 2월 초 공식 발표를 앞두고 있다. 코오롱은 향후에도 최근 신설된 프로젝트 그룹을 통해 젊은 감성의 브랜드에 투자를 감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에프앤에프 역시 패션 기업 투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무신사파트너스와 함께 ‘안다르’에 투자했고, 이 외에도 패션을 비롯한 뷰티 분야까지 적지 않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해 패션 잡화 ‘로우로우’와 지분 투자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로우로우’는 무신사, 29CM 등에도 입점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으며, 온라인에서의 좋은 반응에 힘입어 현재 플래그십스토어와 신세계백화점 등에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일본, 독일, 중국, 호주, 태국, 대만, 싱가포르 등 13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향후 로우로우의 유통망 확장과 생산 및 물류 인프라를 지원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이밖에도 삼성물산패션부문 역시 유명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 지분 투자가 이루어진 사실이 확인됐다.
케이투그룹 경영지원 본부 정용재 상무는 “지난해 말부터 패션 대기업 및 중견기업들이 패션 스타트업에 투자 유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대명화학이나 무신사의 투자 플랫폼이 세간에 알려지며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아직 투자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없지만, 괜찮은 브랜드나 플랫폼이 있다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올해부터는 국내 시장의 대형 패션 기업들도 슬슬 시동을 걸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새로운 고객 확보에 한계를 겪고 있는 한섬이나 대현 등 여성복 전문기업과 자본력을 갖춘 스포츠, 아웃도어, 골프 등의 오프라인 중심의 기업들도 브랜드 투자 유치전에 뛰어들 것이라는 예상이다.
패션투자 1세대 태진인터내셔날, 시몬느
물론 패션 벤처나 플랫폼에 투자했던 패션 투자 기업 1세대는 태진인터내셔날과 시몬느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패션 기업들의 투자가 전무했던 시기부터 패션 펀드를 조성, 과감한 진행해 왔다.
태진인터내셔날은 모회사와 투자법인 LX인베스트먼트를 통해 공격적인 인수와 투자를 진행했다. 에스피알씨(SPRC)의 애슬레저 ‘슈퍼링크’, 맞춤셔츠 ‘스트라입스’ 등을 인수하거나 투자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라이프스타일 ‘트레블메이트’의 지분 90%를 250억원에 인수하며 큰 손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세계 1위 명품 핸드백 제조기업 시몬느는 계열사 시몬느자산운용PE을 통해 패션시장에 과감한 투자를 감해해 왔다. 지금은 엑시트(투자자나 창업자가 회사에 투입한 자금을 회수하는 것)가 됐지만 편집샵 원더플레이스에 30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초에는 이랜드월드의 로이드(LLOYD)’와 ‘오에스티(O.S.T)’ 등 총 5개 브랜드 주얼리사업부에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해 총 2200억원을 투자했다. 시몬느PE가 프로젝트 펀드로 1000억원 가량을 조달했고 나머지는 유안타증권이 인수금융을 제공하는 구조였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패션 업종이 투자 대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데는 우리나라 벤처기업이 해외에 진출해 성공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경쟁력 있는 쇼핑몰이 모여 기업화를 이룰 경우 유니콘 기업 규모의 패션벤처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자는 새로운 비즈니스
투자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되고 있다. 패션에 투자하든, 패션이 투자하든, 투자를 받든 모두 비즈니스를 만들어내기 위함이며, 이는 곧 수익을 창출하게 된다. 물론 실패도 하지만 브랜드를 실패했을 때의 손해 보다, 적은 금액으로 투자했을 때 피해는 작고, 수익은 많을 수 있다. 한 군데 올인하는 것이 아니라 작게 작게 여러 군데 투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제품만 잘 만들면 된다’는 식의 마인드로는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흐름을 파악하고, 숲을 볼 줄 알아야 한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고생고생하면서 브랜드 하나 키우기보다 잘하는 친구들이 키워놓은 비즈니스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투자자들이나 했던 일을 누구나 할 수 있게 되고, 새로운 시각으로 이를 바라보는 업체들이 많아지고 있다. 패션에 대한 투자를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으며 그들에게는 하나의 수익 창출 모델이 되고 있다.
패션에 투자한 한 업체 대표는 “20억원을 투자해 4년 만에 투자 가치가 120억원을 넘었다. 돈만 넣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100억원의 수익을 낸 것이다. 패션 비즈니스의 특성상 순수익 5%를 내기가 어렵다.
100억 원의 수익을 내려면 연 매출 2천억원 규모의 브랜드를 운영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을 버는 이보다 좋은 비즈니스가 어디 있겠나”고 말했다.
출처 : 패션포스트 / www.f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