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발생 과정이 뒤집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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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가장 이슈가 된 인물 중 하나는 누가 뭐라 해도 양준일 씨일 것이다.

JTBC 예능프로그램 ‘슈가맨’을 통해 소개된 그의 굴곡 많은, 하지만 이제야 하게 된, 묻혀 졌던 이야기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여느 아침 방송이었다면 눈물도 흘리고, 한 맺힌 지난 세월을 토해내듯 했을 법 한 이야기를 끝까지 밝은 얼굴로 덤덤하게 남이야기 하듯 웃으면서 마무리 한 양준일 씨의 순수한 모습은 50세라는 나이와는 대조되어 더욱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그의 우여곡절 많았던 과거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매체를 통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터이니 건너뛰고, 여기서는 조금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양준일을 알고 있는 10대

우선, 양준일씨가 주목받게 된 과정은 미디어를 통해 조금 다뤄지기는 했지만 굉장히 독특하다. 방송에서도 비춰졌듯이, ‘양준일’이라는 이름을, 그의 데뷔곡이었던 ‘리베카’를 기억하는 이들은 40대가 대다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양준일 씨는 1991년 데뷔하여 크게 주목받거나 가요 차트를 점령한 부류의 인물은 아니었다.

다만 당시로서는 워낙 독특한 외모와 옷차림, 한국인에겐 다소 유치하게 들리는 가사와 지나치게 심취 한 듯한 퍼포먼스가 인상 깊었기 때문에 그의 무대를 봤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기억하는 정도랄까? 재미있는 점은, 40대를 제외한 나머지 세대 중 양준일 씨와 시간의 갭이 가장 큰 10대들 일부가 그의 음악을 알고 있더라는 것이다. 사실상 대중문화의 주류인 20~30대의 거의 모두가 들어본 적조차 없는 이름인 ‘양준일’을 어떻게 10대들이 알고 있는 것일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양준일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해당 TV 프로그램을 통해서이겠지만, 사실 2018년 즈음 부터 유튜브를 통해 양준일이라는 이름에 대한 호기심을 표현하는 10대 청소년들의 흔적은 발견된다.

90년대 음악이나 방송을 다루는 채널 등을 통해 비춰진 ‘30년 전의 한국 대중문화’라는 덩어리 속에서 유독 돋보였던 인물이 바로 양준일 씨였던 것이다. 이런 관심은 2019년 들어 조금씩 개념화 되어간다.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는 정도로 떠돌아다니던 90년대의 대중문화 소개 채널은, ‘온라인 탑골공원’등의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채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데이터가 모이게 되고, 나름대로 마니악 하지만 규모를 갖춘 일종의 창구 역할을 하게 됐다.

뉴트로의 최대 수혜자

10대들을 중심으로 당시의 아티스트들에 대한 본격적인 ‘재해석’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돋보였던 것이 바로 ‘탑골 GD’라 일컬어지던 양준일 씨였던 것이다.

즉, 지금 대한민국의 양준일 신드롬은, 사실상 양준일과는 가장 거리가 먼 10대 청소년들에 의해 만들어진 셈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재미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뉴트로(Newtro)’라는 말, 과거의 것들을 새롭게 즐기는 경향은, 2019년의 소비 트렌드를 크게 바꿔놓을 만큼 이미 지금의 모든 문화 흐름 한 가운데에 존재한다.

그리고 ‘양준일 신드롬’은 어쩌면 가장 큰 ‘뉴트로의 수혜자’일 것이다. 즉, 기성세대를, 학생 신분을 벗고 본격적으로 사회 조직에 편입되기 시작하는 20대 중반 이후의 세대로 전제한다면 ‘뉴트로’는 철저하게 ‘기성세대에 속하지 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발생되고 있다는 것이 기존과는 다른 점이다.

즉, 뉴트로는 기존의 관점과 고정관념을 완벽하게 벗어난 관점을 가진 이들에 의해 발생하고 있으며, 똑같은 것을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다는 점에서 다다이즘과도 닮아있다.

20년 전 양준일의 음악은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는 ‘신기한 음악’이 아니라 ‘힙한 음악’이며, 과해 보이던 그의 옷차림과 지나치게 심취한 듯한 동작들은 ‘저 세상의 힙함’으로 받아들여진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탑골 GD’를 즐기는 젊은이들은 ‘20년 전의 양준일’을 즐기고 있는 셈이니, 어쩌면 양준일 씨는 처음부터 20년 후에 인기를 얻게 될 팔자였는지도 모르겠다.

<뉴트로 자작곡 ‘소년점프’로 인기를 끈 마미손은 멋짐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풀었다>

<뉴트로 자작곡 ‘소년점프’로 인기를 끈 마미손은 멋짐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풀었다>

해학의 미

두 번째, 이는 비단 양준일 씨의 경우 뿐 아니라 최근의 대중문화 전체에서 동일하게 보여지고 있는 흐름인데, 그건 바로 ‘해학의 미’가 존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해학(諧謔)’은 ‘풍자’나 ‘조롱’과는 다른 개념의 유머로, 해학에는 반드시 ‘선의(善意)의 웃음’이 전제된다.

양준일 씨는 ‘탑골 GD’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지만, ‘탑골’에는 지금의 X세대들(40대 꼰대들)이 자신들이 젊은 시절 파고다 공원의 노인들을 부를 때 사용하던 같은 단어의 조롱 섞인 뉘앙스가 들어있지 않다.

오히려 다소 독특한 발음에서 오는 묘한 쾌감과, ‘늙었지만 멋있어~’라는 기분 좋은 해석이 담겨있다. ‘온라인 탑골 공원’이라는, 90년대 음악 등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시작된 ‘탑골 놀이’는, 양준일 씨를 탑골 GD로, 이정현 씨는 ‘탑골 가가’등으로 부르는 식으로 구세대의 산물들에 나름대로의 리스펙트를 표현하는 것이 지금 젊은 세대들의 해석 방식이다.

2018년에 크게 히트했던 마미손의 ‘소년점프’는 이런 새로운 코드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뮤직비디오 속의 마미손은 수 십 년 동안 불변하는 ‘패션 테러리스트룩 넘버원’인 셔츠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열심히 슬램덩크의 한 장면을 구현하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골을 넣지는 못한다.

또 그는 진지한 마음으로 필살기라도 연마하려 함인지 운동을 결심하지만, 그 운동이라는 것은 고작 아줌마들이 가득한 한강 시민 공원에서의 생활체조 따라하기라던가 동네 공원에 항상 보이는 아주머니들의 허리 운동기구가 전부다. (심지어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가사는 진지하고 태도는 근엄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양새가 근사함과는 거리가 멀다.

남을 깎아내리거나 때리고 괴롭히며 조롱하거나 윽박지르면서 웃음을 유발하던 코미디 프로그램이 난무하던 것이 불과 10여 년 전이고,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고 차를 몇 대나 가지고 있는지, 집은 몇 평이고 사는 동네는 어디인지, 또 자신이 얼마나 잘난 사람인가를 자랑하듯 떠드는 것이 ‘스웩’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욜로’라고 해석하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의 현상들이었던 것에 반해, 최근 들어 대표적으로 ‘조금 부족하지만 그래도 괜찮아’라고 이야기하는 방탄 소년단이나. 하지만 걱정하지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질거야. 라고 이야기하는 양준일 씨는 2020년의 대한민국 문화가 흘러가고 있는 방향성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권위와 형식의 박살

요약 해 보자면, 양준일 신드롬으로 드러난 두 가지의 문화적 의미는, 문화의 발생 과정이 보다 특징적으로 하류->상류로 역행하고 있다는 것과, 그 과정 속에서 권위적이고 형식적인 일련의 법칙들이 보기 좋게 박살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뉴트로’라는 형태로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과, 2019년을 기점으로 ‘긍정’의 ‘선의’를 전제한 해학의 코드가 전제된 것들을 사람들이 선호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패션계에도 적용되고 있다. 럭셔리 하우스인 루이 비통은 2018년 초에 남성복 디렉터로 버질 아블로를 선택했다.

기존에 루이비통을 이끌던 디렉터들이 마크 제이콥스, 킴 존스,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등 세계적인 패션스쿨을 졸업한 엘리트 백인들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패션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패션계 인사들과의 커넥션 또한 없다시피 한 일리노이출신 흑인 공돌이를 선택한 것은 대단히 혁신적인 선택이자, 한국의 패션 브랜드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루이비통의 2019년 1/4분기 매출은, 버질아블로를 영입하던 전년도 동기간과 비교했을 때, 무려 16% 증가했다.

 

출처 : 패션포스트 / www.f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