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영화 제목이 아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이다. 말장난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이치가 다 이렇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어느 지인이 엉뚱하게도 필자가 30년 동안 써 놓은 원고를 달라고 했다. 필자의 블로그를 읽다 보니 재미있는 내용이 많아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 필자의 원고를 모아서 유통으로 바라본 ‘30년 변천사’ 라고 정의하고 세상의 변화를 정리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원고 정리 겸해서 컴퓨터를 뒤져 보니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600여 편의 글을 기고했다.
신문, 잡지, 방송원고 등 다양한 매체에 패션, 유통에 대한 글을 줄곧 기고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표현한 옛날 사람들의 감각으로도 3번이나 변한 세상을 특정 키워드로 정리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인 것 같다. 지금 감각이라면 세상은 30번도 넘게 변했을 테니까.
롯데, 200여 점포 정리
최근 롯데쇼핑이 강도 높은 ‘다운사이징(Downsizing)’을 통해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수익성을 개선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롯데쇼핑 내 백화점, 마트, 슈퍼, 롭스 등 총 700여 개 점포 중 200여 개 비효율 점포를 접는 구조조정이 최우선 과제로 전체 오프라인 매장의 30%를 줄이는 극약 처방을 제시했다.
또 다른 뉴스도 있다. 이마트 영업이익이 작년 4분기에 전년대비 714억 원이 감소해 결과적으로 100억 원의 적자를 냈다고 한다. 작년 2분기에 이어 분기당 영업이익이 두 번째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국내 유통을 견인하는 최대 기업에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까? 한 마디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상황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점포는 매출 인식 단위이다. 따라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다점포를 전개한다면 전체 매출이 오르고 이익이 극대화한다. 고객 수를 늘리거나 객단가를 늘리면 매출은 성장한다. 여기에 점포 수를 늘리면 매출은 기하급수로 성장한다. 이는 성장 시기에 통하던 논리이다.
단위 점포당 적정 매출이 나오지 않으면 즉, 고객이 늘지 않거나 객단가가 오르지 않으면 그때부터 점포는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이때는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비효율점포로 전락하면 그 점포를 폐쇄하는 것이 단기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된다. 롯데는 이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쿠팡, 12조원 기록
무점포인 쿠팡의 매출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상품 취급고는 매출액의 두 배 이상인데, 작년에 약 12조원을 기록했다. 성장기 대형마트가 점포 출점에 목숨을 걸었다면 쿠팡은 배송물류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 결과, 24개의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쿠팡맨’이라는 배송 직영 인원으로 인해 적자가 크게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머니게임으로 들어선 이상 누적적자 4조원은 문제가 아니다. 7080의 고령 세대 조차도 쿠팡의 앱으로 초대돼 있는 상황에서 쿠팡의 취급고 12조원은 경쟁사의 고객을 줄였거나, 객단가를 줄이고도 남는 숫자이다.
보다 정확히 계산하자면 2018년에 비해 확대된 쿠팡의 거래액 3조원은 경쟁사의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그 경쟁의 큰 축이었던 대형마트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음으로써 이마트 마저도 최초의 적자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20년 동안 유통업을 리딩하던 대형마트가 이렇게 자존심을 구긴 이유가 단지 쿠팡 같은 경쟁사 때문일까?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시장
독신 가구의 증가, 소량구매, HMR 등 소비환경 변화도 영향을 주었지만, 디바이스의 개발에 의해 소비자가 현명해진 업태와 만나게 된 것이 대형마트 위축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인터넷과 PC의 보급으로 인터넷 쇼핑이 확장하던 2000년대 초반과 CATV로 인해 TV홈쇼핑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2000년 중반을 거쳐,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모바일 쇼핑이 증가하는 현재의 상황이 오프라인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의무 휴일제와 영업시간 규제와 같은 중소상인보호 정책도 영향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대형마트가 들어서던 초기에는 정부에서 대형마트를 바라보는 시각이 지금과 달랐다.
대형마트로 인해 국내 물가안정이 유지된다는 관점에서 대형마트 물류 부지 등에 혜택을 준 사례도 있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하여 대형마트가 다점포를 통해 매출 인식 단위로 점포를 공격적으로 확대하면서 지역 소상공인의 다양한 저항을 받게 됐다. 신규 점포의 출점 규제는 물론 의무 휴일제, 영업시간의 규제 등을 통해 지역 소상공인과의 상생이 강제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12조원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쿠팡을 비롯해 유사 모델인 위메프, 티몬 등 소셜커머스 계열과 네이버, 11번가, 이베이, 옥션 등의 오픈마켓 계열 등 후발 무점포 소매업이 중소상인에 대한 상생 책임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은 신흥시장의 성장을 담보한다는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
점차 투자 시장은 오프라인 유통보다는 온라인, 모바일 마켓에 투자하는 머니 게임을 치르게 된다. 지금은 이것이 맞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월마트가 아마존의 공세에도 견디며, 점포를 또 다른 배송의 무기로 사용해 시장에 새로운 사인을 주는 것도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워렌 버핏이 미국의 슈퍼마켓 체인인 ‘크로거’의 주식을 자산에 편입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되고 있다. 성장이 정체돼 있는 크로거이지만, 워렌 버핏은 크로거가 보유하고 있는 4,000개의 점포가 수행할 수 있는 배송 기능에 배팅을 한 것이다. 결과를 봐야겠지만, 줄곧 외면 받던 오프라인 점포의 가능성에 새로운 시선이 쏠리고 있다. 현재의 국내 대형마트의 전략적인 전환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30년간 써온 원고를 찬찬히 읽어보면, ‘그때는 맞다’는 주장의 글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그 글을 평가해보면, ‘지금은 틀린’ 경우도 많다. 쑥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전문가는 글을 함부로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투자자들이 신중한 투자를 하듯이 전문가도 글쓰기에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글에 책임을 져야한다.
출처 : 패션포스트 / www.f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