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그래퍼 WILLY VANDERPERRE 인터뷰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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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워프 기반의 사진작가 Willy Vanderperre는 젊음의 문화로부터 패션의 열망까지 장르를 혼합한 장인으로, '패션' 포토그래퍼의 한계를 뛰어넘어 현대 욕막의 인류학자, 성년기, 교외의 고립주의자가 되었다.

반더페르는 앤트워프에 다니던 중 패션 디자인에서 사진으로 전공을 바꿨다. 디자인 기법에 대한 그의 이해는 Another, Another Man, Love, US Vogue 등과 같은 출판물의 에디토리얼 컨트리뷰터로서 그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지난 20년 동안 반더페르는 프라다, 라프 시몬, 캘빈 클라인, 크리스찬 디올, 디올 옴므, 질 샌더 등과 같은 브랜드들을 위한 많은 작업들을 해왔다.

Kenneth Richard는 재능 있는 장인과 함께 앉아 자신의 경력, 디지털의 출현, 예술의 영향, 새로운 매체 탐구, 영화의 부상, 팀과 광고 캠페인, 그리고 판단의 두려움 없는 창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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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eth Richard : Willy, 함께 해줘서 고맙다. 당신이 처음으로 카메라를 들게 된 것은 언제, 그리고 이유는 무엇인가?

Willy Vanderperre : 나는 항상 호기심 많은 아이였고, 항상 사물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와 그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있었다. 나는 책을 집어 들 때마다 그 책이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싶어 먼저 마지막 페이지를 읽곤 했다. 15,16세때 나는 미술대학에서 그림 그리기부터 건축, 도자기까지 모든 것을 맛보았지만 포토그래피는 무시당했다. 나는 왜 그 특정한 형태의 표현 예술이 배제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 점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래서 토요일 주말 클래스에서 사진을 시작했다. 왜 이 예술 형태가 대학에서 제외되었는지 정말 궁금했다. 그것이 나를 끌어들인 것이다.

주말 클래스의 스튜디오에서 첫 수업을 한 후, 나는 당신의 눈이 주변을 그리는 방법, 보는 것에 대한 추상화, 특정 지점/사람/객체에 대한 날카로운 집중에 매료되었다. 그것은 나의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기 시작했지만, 적극적인 방법보다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마치 내가 렌즈를 통해 보는 것처럼 사물을 바라보려고 애썼다. 원한다면 좀더 집중하라. 그러나 그 나이에 카메라를 들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만큼 사진은 특별한 것이었다. 카메라를 소유하고, 필름을 사야했기 때문이다.

18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전문 카메라를 사게 되었는데 그것을 두려워했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앤트워프로 가기 직전에 토요일 주말 클래스는 더 많은 실험을 시작한 곳이다. 이 새로운 표현 방식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정의하고 내 언어를 찾도록 했다. 그러나 그 당시 나의 패션에 대한 집착은 너무 커서 카메라가 있어도 그것은 단지 취미였다.

나의 첫번째 사진은 나의 고향과 그곳의 주민과 젊은이들, 그리고 그 이상에 바탕을 둔 것으로 나는 "잘못된 사람들"에 초점을 맞췄다. 사람들과 내가 자란 도시에 반기를 들었고 동시에 사진을 찍어 집착했다. 내가 앤트워프에 다닌 첫 주 밤에 도둑이 이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을 가져갔기 때문에 나는 매우 슬펐다.

이제 카메라로 스마트폰이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아이들은 더 쉽게 사진찍기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 당시 무의식적으로 나는 이미 나의 가장 큰 프로젝트 중 하나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는데, 그것은 사진에 많은 흥미가 있지만 핸드폰만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 사진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너무 전통적인 방식이여서 몇 년 동안이나 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지미 모팻과 레드 훅 연구소를 통해 사진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 개방된 장소인 앤트워프에서 시작하고 싶은 것의 청사진이다. 그들은 배우고, 실험하고, 표현하고, 동시에 이해할 수 있다.

“젊은 크리에이터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것은,

나눔으로 세대간의 거리를 좁히는 고무적인 일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렇다, 나는 여전히 이상주의자이고 몽상가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 프로젝트를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스튜디오와 나는 장소를 찾고 있었고 손을 뻗어 프로젝트를 위한 씨앗을 심고 있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다. 그것은 성취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지만, 나는 언젠가 그것이 완성되어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주말 클래스가 내게 준 것과 같은 가능성을 그들에게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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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eth Richard: 매우 의미 있는 프로젝트처럼 들리네. 당신과 패션이 어떻게 교감하는지에 대해 더 많이 알고싶다. 어떻게 패션에서 당신의 소명을 찾았으며 무엇이 당신의 흥미를 유발시켰는가?

Willy Vanderperre : 내가 16살이었을 때, 벨기에는 앤트워프 6과 함께 패션 혁명 중이였다. 그들은 마치 록 스타 같았고 당신은 신문, 잡지, TV에서 그들에 대해 읽었을 것이다. 그들은 벨기에에서 처음으로 그 지위에 도달했다. 나는 그들에게 매우 감명을 받았다. 작고 잿빛의 위험한 국경도시(그 당시 유럽에는 여전히 국경이 존재했음)에서 자라면서 패션은 내 주변의 모든 것과 사람들에게 반항하는 나만의 방식이 되었고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그것은 표현의 한 형태로서, 매우 직설적이로 보여지지만 동시에 완벽한 방패, 일종의 보호장비다.

고향 사람들은 나를 조금 무서워했고 그 때문에 이상하게도 나를 더 인정했다. 만약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어느 정도는 그렇다. 네가 정말 망치고 싶지 않았던 놈도 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내가 자란 마을은 험한 곳이였고 마약과 폭력이 많았다. 내 외모로 인해 나는 괴상한 남자로 여겨졌고, 심지어 내 성적 성향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또한 내 인격은 내 옷과 같이, 거리를 걷고,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주변과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것이 나를 강화시켰다. 이런 식의 자기 표현은 나에게 정말 중요했고 궁극적으로는 앤트워프 패션 스쿨에 다니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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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eth Richard: 그것은 왜 당신 작품이 종종 고립주의와 성년기에 만나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지 설명해준다. 자신만을 위한 개인 소장품이 있는지 궁금하다.

Willy Vanderperre : 그렇다, 나는 젊음과 그 순수함, 탐험, 실험 정신, 그리고 당신의 인생에서 그 기간의 모든 것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고립주의와 성년기는 반복되고 있다.


“나에게는 고립주의와 성년기, 이 두 가지가 결합된다.

자신의 행동과 생각, 감정에 대해 먼저 의문을 제기하는 시간이다.

그것은 완전한 자기 반영이자, 심지어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 너에 관한 것이다.

당신의 첫 번째 성적 경험처럼 상실감과 오해 속에 그런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모든 것 중 첫 번째이다.”

By “personal collection”, do you mean pictures I’ve taken that I don’t 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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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eth Richard: 그런가.

Willy Vanderperre : 나는 몇몇 이미지들을 비밀로 한다.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다른 세계와 공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저지른 실수이기도 하다. 어떤 이미지들은 너무 개인적이어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없다.

Kenneth Richard: 우리는 패션에 대해서만 말하는 많은 패션 아티스트들을 만나지만 당신의 작품은 춤에서부터 예술까지 모든 것을 망라한다. 당신은 어떻게 당신의 자유시간을 예술을 탐구하는데 보내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진은 예술이다, 그냥 말하자면 패션 사진은 예술이다.

아니면 적어도 창의성과 사고 과정을 적절하게 고려할 때,

패션 사진은 예술과 관련이 있고 정의되어 있다.”


Willy Vanderperre : 예를 들어 우리가 볼 때 플랑드르 고수나 그라나흐 같은 예술가가 초상화를 그렸을 때, 모델은 가장 유행의 옷을 입었을 것이다. 만약 그때 사진들이 존재했다면, 나는 그 초상화들이 사진이 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떤 사람들은 패션 사진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다른 어떤 예술 형태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중요하다. 반면 나만패션 사진작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제한적이다. 나는 전진하는 것을 좋아하고 진보와 미래에 집착한다. 나는 정말 뒤돌아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을 번역하기 위해 과거의 경험과 감정을 사용하지만, 나는 기술을 사랑한다. 그것은 내가 즉각적으로 디지털 사진을 받아들인 이유 중 하나이다.

또한 테슬라가 전기차를 발표했을 때 경외심을 느꼈고 인시이트가 화성에 착륙했을 때 완전 긴장 상태에 있었던 것과 같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미사일이 지구로 다시 착륙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내가 보거나 목격하는 것에 감동, 분노, 감동, 감동, 짜증나는 것을 좋아한다. 춤에서 그림, 연극까지. 이 모든 형태의 표현과 공유는 나에게 흥미롭다.

나는 현재 대본을 쓰고 있다(최종화는 더 좋은 말이다!) 그것은 나의 두 번째 짧은 특집으로, "나체된 하트랜드"를 쓴 직후에 쓰여졌지만 숙성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집어 들어야 할 때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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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eth Richard: 나는 확실히 Naked Heartland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나 라프 시몬 예술 참고문헌은 내가 광고에 대해 먼저 생각하도록 만든다. 프라다에서 캘빈클라인까지 각자 독특한 DNA와 팀을 가진 상징적인 캠페인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과정은 무엇인가?

Willy Vanderperre : 창의적인 것. 그들은 대화와 교류, 나눔과 브레인스토밍으로 시작한다.

그러한 브랜드에 있는 창조적인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이 이미 풍요로운 경험일 정도로 놀라운 사고 과정과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서로의 두뇌를 나누는 다음 단계로 나가는 것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당신이 두 사람 모두 독특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듯이, 그것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은 항상 흥미진진하고 도전적이다.

“나는 팀워크에 관심이 많고 혼자 하는 일을 믿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하는 일의 묘미다.

대화, 사고 과정, 다시... 나눔, 모든 그림은 팀워크에 관한 것이다.

모델과 단둘이 있어도 그것은 두 사람 사이의 언어다.

내 팀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전부이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외침: 로맹 두부스 - 라이트 기술자, 헨리 쿠탕트 - 디지털 기술자, 엘리사 알렌바흐, 스테파니 자일렛, 맥시밀러, 스테판 벨로거스, 내가 포스트 프로덕션으로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내가 하는 모든 일에 관련된 핵심 멤버들이다. 그 옆에는 빌리 알보레스와 새 스튜디오 매니저 리제 루브브레히트가 있다.

이 사람들은 놀라운 재능을 가진 내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한지 돌아보게 해준다. 또한 프로듀서들, 그들은 항상 그곳에 있었으며 스타일리스트들과 헤어 메이크업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그 일을 이해하고, 창조하고, 진화하고, 도전하는 사람들과 함께여서 매우 운이 좋다.마지막으로 나의 작업의 모든 단계인 올리비에 리조를 언급하지 않고는 이 생각의 릴레이를 끝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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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eth Richard: 팀워크는 재능이고 우리는 당신의 말한 것처럼 감사의 말을 좋아한다. 아무도 혼자서 일할 수 없다. 그럼 이제 디지털에 관해 애기해 보자. 지난 2015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베이스로한 635라는 제목의 책을 발표했는데, 오늘 인스타그램에서 찍은 사진들이 책이 나온 후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Willy Vanderperre : 우선 틀이 없어졌다. 나는 내가 나의 첫 번째 사진집을 출판할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그것은 보통 잘 다듬어진 이미지 책과는 다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Instram그램에 나는 큐레이션을 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 방금 나온 이미지, 티저등을 무작위 순서로 올린다.

635책은 인스타그램에서 뽑아낸 책인데, 나는 그 품질조차 바꾸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두 단어, 솔직하고 직설적인 느낌이었다.

그것은 IDEAbooks와 나의 공동 작업이기도 했다. 그들은 8월 말에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9월 중순 뉴욕에서 책이 출간되었다. 그것은 매우 인스타였다! 그러나 인스타그램으로 돌아가 그것이 상업적 플랫폼이 되는 순간.... 더 이상 그것은 만든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전문적 도구가 되었다. 팔로워 숫자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은 미친 짓이지만 젊은이들에게 그것은 전부가 되었다.

그들은 평행하는 가상 현실이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사업적으로는 팔로워가 항상 고객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좋다'는 것이 항상 진실은 아니다. 대부분 그것은 호감자에 대한 타당성 확인이다. 그가 이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 비록 실제 생활에서 그의 정체성은 완전히 정반대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체를 좋아한다. 지금은 아마도 이미 어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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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eth Richard: 최근 디지털 작업만을 위해 얼마나 많은 데이타를 쌓고 있으며, 과거에 했던 작업과는 어떻게 다른가?

Willy Vanderperre : 나는 모든 플랫폼들을 같은 에너지와 관심으로 대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 일들에 대한 접근법을 바꾸지 않는다. 작업이 바뀌면 표현이 달라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각각의 작업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점에서 일은 달라질 수 있다.

Kenneth Richard: 영상은 당신의 창조적 작업의 큰 부분이 되었다. 어떻게 지금의 필름을 만들 수 있었는가?

Willy Vanderperre : 패션에서 필름은 중요한 목소리로 자리잡았다. 당신의 질문에서도 그 단어는 '필름'이고, 반면 '움직이는 이미지'는 움직이는 사진일 뿐이었다. 그것은 서술적인 내용 없이 오직 제품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했었다. 아직도 몇몇 브랜드들은 여전히 그 원칙에 따라 일한다.


“패션 필름에서 가능성을 보는 사람들은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의복과 가방을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명한 방법은 아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객들을 유혹할 수 있기 때문에

스토리를 갖는 방향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어떤 브랜드의 패션 영화를 보는 사람이면 이미 그 브랜드에 대해 알고 있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을 지적으로 대하는 것은 존경할 만하다. 다행히도 많은 브랜드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아주 짧은 시간에 촬영으로 옮기고 있다.

요즘 나는 움직이는 가방을 보면 움츠러들지만 그것은 환상적인 매체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이야기, 스토리보드, 편집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훨씬 더 보람 있으며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매개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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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eth Richard: 그래서 우리 Naked Heartland 필름을 돌려줬지. 어떻게 된 건지 말해 줄 수 있나?

Willy Vanderperre: 오래 전부터 구상했던 프로젝트였다. 브레이빅(Breivik, 2011년 7월 22일 ~ )의 공격과 그가 어떻게 유명인이 되었는지를 계기로 더욱 구체화되었다. 어떻게 그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며 어떻게 살해된 아이들이 세계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지 다룬다. 이것은 콜럼바인과 다른 대학살이다. 예상치 못한 폭력이 일어났을 때 첫 키스, 첫 이별,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을 경험했을지도 모르는 관련된 모든 어린이들을 다루는 내가 작업한 가장 자전적인 프로젝트다. 그것은 내가 자란 지역의 고립을 다룬다. 사춘기의 고독과 고립, 그리고 당신의 삶에서 그 시절의 불안감. 나는 그것을 열린 해석의 시각적인 시로 취급하고 싶었다.

이 곡은 나와 같은 지역 출신인 아멘라와 그들의 앨범 Mass V에 의해 쓰여졌고, 이것은 대본을 집필하는데 영감을 주었다. 들어보면 그 앨범에서 그 지역의 고립과 황량함과 생동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들과 협력했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또한 '나체된 하트랜드'를 찍고 싶을 때 이 영화가 내가 많은 작품을 동경하는 사진 감독 니콜라스 카라카츠아니스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나의 언어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이해했으며, 그 당시 내 주위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행운이였다. 3년 전 창간 후에도 첫 번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바로 그 핵심 인물들이 다음 모험에 나와 함께 일하기를 열망하고 흥분한 것은 현재 사전 제작을 끝내고 있기 때문이다.

Kenneth Richard: 축하한다. 당신은 사람들이 앞으로 창의적인 작업을 위해 어디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Willy Vanderperre: 자신의 직감적인 판단의 두려움을 없애야한다. 그래야만 창의적인 권리를 얻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다.

Kenneth Richard: 당신이 기대하는 다음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Willy Vanderperre: 책, 쇼, 영화, 캠페인 등 언급할 것이 너무 많아서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기대되고 또 한편으로는 다음 휴일에 친구들과의 만찬, 콘서트... 또한 너무나 많은 사적인 것들도 기대하고 있다. 나는 항상 다음 일에 굶주려 있다.하지만 여기나는 지금 현재 상태에 매우 만족하며 행복하다. 다음 일은 신경 쓰지 않고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


출처 : Theimpress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