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멍에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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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멍의 공동 설립자였던 뎀나 바잘리아가 베트멍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뎀나 바잘리아는 지금까지 베트멍과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직하고 있었다. 사실 베트멍과 발렌시아가 중 한쪽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면 헤리티지, 규모, 자본력, 영향력 그리고 발렌시아가 뒤에 있는 케어링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발렌시아가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는 했다.

즉 뎀나 바잘리아가 패션계를 완전히 떠나는 건 아니다.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는 계속 일한다. 바잘리아 형제가 베트멍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도 아니다. 베트멍은 구람 바잘리아와 뎀나 바잘리아 형제가 공동 설립했는데 뎀나는 디자인과 크리에이티브 파트를 구람은 경영과 홍보 파트를 맡고 있었다. 뎀나는 떠났지만 구람은 남는다.

베트멍의 영향력 급격히 축소

사실 최근 베트멍의 영향력은 급격히 축소되고 있었다. 2015년에 등장해 내놓는 것마다 SNS와 인터넷을 엄청나게 달궈 놓던 화제성도 사라졌다. 물론 그에 비례해 매출도 떨어졌고 몇몇 대형 리테일 체인에서도 빠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한참 전부터 베트멍을 접는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에 대해 뎀나 바잘리아가 직접 나서 이를 부인하는 일도 있었다.

앞으로 베트멍의 역할과 운명은 꽤 바뀌겠지만 이들이 미친 영향이 금세 사라지는 건 아니다. 베트멍은 하이패션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 변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베트멍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서구의 대량 생산 패션과 트렌드에 대한 뒤틀린 인상, 고급 패션에 깔려 있는 아이러니, 과장된 로고 등을 뭉친 럭셔리 스트리트 웨어라는 흐름은 많은 브랜드에서 반복되고 있다.

또한 최근 가장 중요한 흐름 중 하나는 패셔너블함의 새로운 기준이다. 이전과는 다른 식으로 패셔너블함에 대해 생각한다. 여기에는 러시아나 동유럽 출신 디자이너들이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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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어린 시절을 소비에트에서 보내고 공산주의 몰락 후 급작스럽게 유입된 미국 문화에 의한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그리고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과장되고 재해석된 미국 스트리트 문화와 틴에이지 문화를 들고 본격적으로 패션의 메인 스트림에 진입했다.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나 티그란 아베스티얀, 스타일리스트이자 베트멍의 컨설턴트였던 로타 볼코바,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Buro 24/7을 운영하고 있는 미로슬라바 듀마 등 러시아와 동구권 출신들은 꼭 단체로 뭘 해온 건 아니었지만 베트멍과 직접, 간접적으로 연관을 가지고 활동의 폭을 늘려갔다. 그리고 이런 패션이 어글리 프리티, 고프 코어 같은 줄기를 만들었다.

무명의 집단에 의한 운용

또 다른 특이한 점으로는 무명의 집단에 의한 운용이다. 베트멍을 대표하는 사람은 분명 뎀나 바잘리아 였지만 그들은 공공연히 이 브랜드가 일종의 디자이너 집단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해왔다. 이런 점은 마치 파리에 진입해 패션의 흐름을 바꿔놓은 벨기에의 앤트워프 식스, 또 마르틴 마르지엘라가 나간 후 디자이너 집단에 의해 만들어졌던 마르지엘라의 과거가 떠오른다.

베트멍은 이런 기반을 가지고 심플한 블랙 레인 재킷, DHL 티셔츠 같은 것으로 하이 패션 팬들에게 놀라움과 유머를 선사했다. 그렇게 해서 매우 효과적으로 파리나 밀라노 바깥에서 메인 무대로 진입하고 변화를 주고 이끌어 갔다. 혼자 힘으로는 어렵다. 다만 앤트워프 식스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앤트워프 식스와 마르지엘라는 자기 이름의 브랜드를 만들어 각자의 방식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아 갔다는 점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렇게 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물론 이건 상황의 변화가 미친 영향이 크다. 1980년대와 지금의 하이 패션 시장은 브랜드 군에 의한 거대 기업화와 전 세계 대상의 판매, SNS 등 빠르고 글로벌한 트렌드의 흐름 등등 굉장히 다르다. 결론적으로 야심 찬 도발로 자리를 잡은 베트멍이라는 신진 브랜드는 이미 은퇴하고 돌아가신 발렌시아가라는 옛 이름을 극복하지 못했다.

디자이너들의 메인스트림 진입

이와 약간 비슷하게 오프 화이트의 버질 아블로도 루이 비통에 들어갔고 그를 중심으로 다방면으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무엘 로스, 헤론 프레스톤, 빈트릴, 노 베이컨시 인, 파비엔 모티크 등 디자이너, 브랜드, 사진작가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의 크루 등이 패션의 메인스트림에 진입해 가고 있다. 이쪽의 흐름은 과연 어떻게 될지도 주의 깊게 지켜볼 만하다.

패션계의 최근 몇 년을 되돌아보면 크게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버질 아블로, 알레산드로 미켈레 그리고 뎀나 바잘리아다. 셋 모두 약간 다른 방식으로 스트리트, 청년 문화를 하이패션으로 이식하고 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구찌라는 브랜드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방을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자기들만의 크리에이티브한 집단이 있고, 다른 브랜드를 이끌고, 하이패션부터 데일리 패션, 일상용품 브랜드까지 수많은 협업을 해온 버질 아블로나 뎀나 바잘리아와는 약간 다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뎀나 바잘리아도 일단은 발렌시아가라는 브랜드 안으로 움직임의 폭을 줄여갔다.

뎀나 바잘리아 같은 인기 디자이너가 나가 버린 베트멍의 미래가 아직은 그렇게 희망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베트멍이 디자이너 집단 기반이라는 점에서 혹시나 재미있어질 수도 있다는 희망은 있다. 지금의 하락은 뎀나 바잘리아가 발렌시아가에 들어간 게 상당한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 뎀나 바잘리아의 더 멋진 패션은 발렌시아가에서 찾는 게 맞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이는 분명 어느 정도 사실일 거다.

다른 이가 등장할 기회

하이패션 브랜드에는 인기 있는 디자이너가 필요하고 베트멍에서 뎀나가 해왔던 것처럼 대표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 말은 베트멍이 계속 나아갈 무언가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면 “디자이너 집단”이라는 이름 속에서 뎀나의 명성 아래 숨어 있던 다른 사람이 등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 브랜드를 왜 남겨놓는가'와 연결된다. 즉 뎀나 바잘리아의 명성과 영향력이 베트멍의 내부 디자이너들이 가는 길을 혹시나 막고 있었다면 앞으로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길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베트멍에 과연 그런 사람이 있을까. 물론 브랜드의 이름값이 여전히 남아 있을 때 어딘가 판다거나 하는 등의 다른 계획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베트멍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든 말든 베트멍이 보여줬던 길은 하이패션에 한동안은 남아 있을 거다. SNS 시대의 사람들은 100만 원 짜리 후드를 입고 있는 자신을 놀리는, 100만 원 짜리 후드 같은 시니컬한 자학적 유머를 여전히 좋아하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출처 : 패션포스트 /www.f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