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여행, 가도 좋고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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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니다.

혼자 밥을 먹는 것, 혼자 영화를 보는 것,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은 십년 전만 해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람들은 늘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고, 가까운 사람과 함께 영화를 보고, 여럿이 어울려 여행을 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유투브를 보면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 음악사이트를 연결해 이어폰을 들으며 트래킹을 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야 혼자지만, 클릭 몇 번이면 온라인 세상의 친구와, 지인과, 혹은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금방 닿을 수 있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로의 이동, 일이 목적이든 유람이든 자기 거주지를 떠나 다른 지역이나 나라에 가는 것, 다른 곳을 떠도는 것을 여행이라고 한다.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전까지 여행길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지금은 대여섯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 영국 런던에서 맨체스터, 1780년대 역마차로 이동 하는 데는 4~5일이 걸렸다. 오랜 시간 이동하는 길은 험하고 피곤하고 종종 예기치 못한 사고도 일어난다. 여행을 의미하는 트래블(travel)의 어원이 트라베일(travail), 즉 고통과 고난, 몸부림인 이유이다.

글로벌 자유여행 액티비티 플랫폼 ‘클룩’은 2019년 글로벌 액티비티 여행 트렌드로 혼자 여행하는 혼행족, 액티비티를 우선시하는 프로여행러, 유투브 여행, 인싸 여행, 모바일 예약, 즉흥예약 등 6가지를 선정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핫한 것은 혼자 여행하는 사람, 이른바 혼행족의 증가이다.

전체 여행객 중에서 솔로 여행객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국내의 경우는 8%, 홍콩, 중국, 홍콩, 호주, 뉴질랜드, 영국 등은 10% 가까이 증가했다. 중국의 경우 아직까지는 단체여행의 성격이 강하지만, 중국 밀레니얼 세대들은 이미 60% 가까이 혼행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행, 가거나 읽거나

국내에 혼행 바람이 분 건 유명인들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의 여행기 때문이 아닐까? 욜로(YOLO)라는 말이 지금처럼 유행하기도 전인 2007년, 직장생활 10년차가 된 KBS아나운서 손미나는 갑자기 사직서를 내고 전 재산을 털어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났다.

선망의 대상인 주말 뉴스 앵커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흔치 않은 상황. 왜라고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녀는 “행복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여행은 작가의 손끝에서 다시 한 번 여행을 떠난다.

스토리가 다시 만들어지고 장면이 재현되며 감동까지 재탄생된다. 작가의 눈을 통해 우리는 실제보다 더 생생한 여행을 할 수도 있다. 스페인에서 자신의 행복이라도 찾은 듯 손미나 작가가 쓴 첫번째 책 ‘스페인, 너는 자유다’는 40만부나 팔리게 된다.

거기에 힘입어 손미나는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어 일본, 프랑스, 아르헨티나, 페루 등의 여행기를 연이어 집필했다.

‘여행에 미치다’, ‘여행처방전’, ‘비긴 어게인 여행’ 등 베스트셀러를 연이어 낸 이화자 작가는 광고 카피라이터와 대학교수라는 직함을 버리고 여행 작가, 시티 브랜딩 전문가, 트래블 스타일러로 살아가고 있다.

여행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자는 결심으로 삶을 전환했는데, 그 여행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전문분야를 확실하게 구축한. 이 작가는 어떤일도 열정적으로 하면 직업이 되더라고 말한다.

김영숙 작가의 ‘신화로 읽고 역사로 쓰는 그리스’, ‘네덜란드 벨기에 미술관 산책’, ‘파리 블루’, ‘영화가 묻고 베네치아로 답하다’등의 책은 이국적인 곳으로 떠나고 싶은 여행에 대한 욕구와 예술에 대한 허기를 동시에 채워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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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가깝고도 먼 여행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토박이에겐 딱히 고향이라고 이름 부를 곳이 없다. 서울을 고향이라고 하기엔 정서적으로 무언가 적합하지 않은 것 같고, 그렇다고 외가나 친가가 있는 곳을 고향이라 할 수도 없는. 그런 필자에게 제주도는 다른 의미의 고향일 수도 있겠다.

고향을 오래 떠나와 서울살이에 지친사람처럼, 일상에 지치거나 무료하거나 무언가 재충전이 필요하다 싶을 때 제주가 생각난다. 오래 만나지 못한 그리운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방금 로스팅한 원두의 진한향을 품은 커피를 마시고 싶은 것처럼, 갑자기 제주에 가고 싶은 충동이 심하게 일 때가 있다.

‘제주고프다’라는 말은 제주에 갈급하다는 나만의 표현이기도 하다.

어느 날은 자고 일어나 아무 계획도 없이 그냥 공항으로 향한 적도 있다. 강릉이나 인천이 아닌 제주도여야 하는 건 일단 비행기를 타야 갈 수 있다는 제한성 때문이다.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 몇 시간 달리면 닿을 수 있는 곳은 그리 설레지 않는다.

집에서 나와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고, 공항에서 탑승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비행하는 동안 또 기다리고, 다시 내려 렌트할 차를 기다리고,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고. 이상하게도 제주에서의 기다림은 시간이 아깝지가 않다.

제주 공항에 드문드문 서 있는 야자수는 내가 서울이 아닌, 다른 어떤 곳에 왔다는 걸 느끼게 해 준다.

곧게 뻗은 고속도로를 잠시 달려 구불구불한 국도를 좀 더 달려 바닷가 인접한 숙소에 도착하면, 어두움이 깔려 잘 보이지 않는 저녁이라 해도 잔잔한 파도 소리와 바다 내음에 내가 참 잘 떠나왔구나 싶어 이내 행복해진다. 제주는 여행하기에 가깝고도 먼, 딱 그런 곳이다.

어떤 소녀가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비행기에 탄다. 소녀에게 삶의 즐거움과 고통을 알게 해 줄 내면세계로의 여행이다.

이 여행으로 인해 소녀는 매우 많은 변화를 겪을 테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그녀에게서 변화를 느끼는 것 소녀 자신뿐일 것이다. 일본 작가주의 감독인 가와모토 기하치로의 12분짜리 컷 아웃 애니메이션영화 ‘여행’의 인트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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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으로의 여행

1973년 제작된 애니메이션 ‘여행’은 유럽 초현실주의 사조의 화면 구성에 불교의 철학적인 토대를 따르고 있다. 더욱 특이하게도 화면 중간 중간 중국 송나라 시대의 시인 소동파의 한시가 삽입된다.

감독은 초현실적인 영상으로 우리를 현혹시킬 뿐, 신비함과 모호함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있어 다소 난해하기도 하다. 구체적인 스토리를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 차라리 화면 가득한 감각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감지하기 어려운 현상들을 영상으로 옮겨놓았다고나 할까. 소녀의 낯선 여행을 관념적으로 화면에 담아내던 영화는 종교적인 이상(理想)을 품은 채 마무리된다.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한번쯤은 보기를 추천한다.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던 석가모니처럼, 내가 그토록 알고 싶어 하는 내 자신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고도 하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 여행이라는 말도 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가까운 서점에 들려보라.

무심히 훑어보다 눈길을 끄는 나라가,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있거든 그냥 집어 들고 집으로 돌아오라. 작가의 손에 이끌려 그대가 꿈꾸던 낯선 곳으로 떠나보라. 상상력이 보태진 멋진 풍경덕분에 당신은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출처 : 패션포스트 /www.f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