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트위드 재킷을 구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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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었다. 아침저녁의 쌀쌀한 날씨와 함께 스산한 바람에 날리는 낙엽들을 보고 있자니 얼마 전에 다녀온 호명산의 단풍이 금세 떠오른다. ‘이제 옷장을 한 번 크게 정리할 때가 되었구나’ 생각이 들 때면, 매년 이맘때만 되면, 생각나는 나만의 ‘행복한 트위드 재킷(tweed jacket)’이 있다.

과연 이 재킷을 어디서 구하면 좋을까, 고민만 하다가 결국엔 계절이 넘어가고 내년엔 꼭 찾아 내야지라는 철 지난 다짐을 또다시 하고 있다.

자전거 축제 트위드 런

사실 트위드에 관심이 더욱 깊게 생긴 이유는 해마다 런던에서 열리는 아주 독특한 자전거 축제인 ‘트위드 런(Tweed Run)’이라는 행사 때문이었다.

트위드 재킷 등의 클래식한 복장으로 클래식한 자전거를 타고 런던을 달리는, 어쩌면 코스플레이(cosplay) 같은 축제가 열린다. 내용을 보면 굉장히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행사인 줄 알았으나 이제 겨우 10년 정도밖에 안 됐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주목을 끌었고, 지금은 뉴욕, 투스카니, 동경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행사가 열리고 있으며, 2013년에는 한국에서도 ‘트위드 런 서울’의 행사가 있었으나 동호회 차원의 작은 규모여서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트위드는 18세기에 스코틀랜드에서 순모로 짰던 그 단단한 트윌(트위드는 런던의 원단 시장에서트윌을 잘못 읽어 그렇게 불린다는 얘기가 있다) 원단과는 달리 그 범위가 예전에 비해 많이 넓어져 홈스펀을 비롯한 각종 거친 모직 원단을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요즘은 옷 또는 가방 같은 액세서리 등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라벨, 바로 해리스 트위드(Harris Tweed)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데, 여전히 수작업으로 제작하다 보니 가격이 비싼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그래도 해리스 트위드는 전통 방식에서 꽤 많은 개선을 통해 예전보다 훨씬 가볍고 부드러워진 편이라 비비안 웨스트우드나 존 갈리아노 같은 브랜드에서도 상당히 많이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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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게 짜여진 트위드

일반적인 트위드 원단은 품질과는 상관없이 표면이 부드럽지 않고 단단하며 거칠다. 원단을 단단하게 짜는 이유는 영국 날씨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하는데, 섬나라 영국은 워낙 척박한 지역이라 기온이 낮고 비가 자주 오며 매우 습한 편이라 한국과는 달리 매서운 칼 같은 추위가 아닌, 습한 기운이 스멀스멀 몸 안에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런 습한 기운이 옷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원단을 단단하게 짜는 기술을 동원하여 방수되는 면 개버딘 천도 개발했고, 흡습과 투습 및 보온성이 좋은 천연 고기능성 소재인 울이 특히 발달하게 되었다. 그보다 더 북쪽의 끔찍한 날씨가 펼쳐지는 스코틀랜드에서 트위드가 개발되었다는 것에 ‘아,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겠군!’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트위드는 아니지만 1800년대 말부터 자전거는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1900년대 들어와서는 전문적인 라이더들을 위한 의류들이 생산되기 시작했는데 그 소재가 모두 양모였다.

양모 반바지와 긴 소매 또는 짧은 소매의 양모 저지를 입었고, 이것은 땀이나 비에 젖어도 보온력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대의 고어텍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을 것 같다. 문제는 당시의 제직 기술의 한계와 울의 특성 때문에 피부와의 직접적인 마찰이 있을 경우 긁히거나 쓸린다는 것이었다.

자전거 레이스에 참가한 선수들이 홈스펀 울 팬츠를 입고 달리다가 옷 때문에 피를 흘리곤 했다는 것은 당시엔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천연에서 합성섬유로 전환

이를 위한 대안은 50년대 이탈리아의 카스텔리라는 브랜드에서 실크 유니폼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실크는 양모보다 가벼우며 색깔이 훨씬 고급스럽고 환하게 나오는 것이 특징이라 자전거 선수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후원하는 스폰서들에게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아 이런 천연 섬유들은 모두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터, 아크릴 등의 소재로 대체되었고, 듀퐁사의 혁신적인 개발품 라이크라가 각종 스포츠웨어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이제 더 이상 선수들은 옷 때문에 경기 중 피부가 쓸리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다시 트위드 런 얘기로 돌아가자면, 이 행사는 2009년 테드 영 잉(Ted Young Ing)이라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창시했다. 그는 구찌와 입생로랑의 아트디렉터였고, 콘란이 만든 해비타트(Ha bitat)의 디렉터, 사이클링 브랜드인 브룩스(Brooks England)의 아트디렉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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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생각했던 바는 트위드 옷을 입은 라이더들이 새빌로우(SavileRow)에 모였다가 런던 시내를 달리는 것이었는데 그는 이것을 ‘안티 라이크라(anti Lycra)’라고 불렀다.

오랜 시간 동안 터프했던 양모를 거쳐 고기능의 원단을 사용하게 된 사이클링 웨어에 절대적인 반기를 든 것이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옷만 차려입고 자전거를 탄다는 것이 아닌, 그가 생각한 기본적인 취지는 ‘자전거는 비싼 기능성 옷과 장비가 필요한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비싼 옷이 필요 없는 라이딩

이 행사의 내용을 보면 약 7~800명의 참가 인원들이 드레스 코드에 맞추어 런던 시내 중심가에서 시작하는데 중간에 티타임을 가지기도 하고 또 피크닉을 즐기는 시간도 있으며 종착지에서는 파티가 열린다고 한다. 경쟁하듯 달릴 필요도 없고 느긋하게 즐기기만 하면 된다.

말만 들어도 즐겁고 행복해지는 느낌이다. 마치 옷장 안에 있는 트위드 재킷이 이런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주는 티켓이 되는 셈이다. 한국에서도 역시 수많은 자전거 대회가 열리지만, 대부분이 스피드 레이스 위주여서 이런 다양성이 무척이나 아쉽기만 하다. 물론 개량한복 자전거 대회 같은 것이라면 말리고 싶지만.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는 옷이 한 벌쯤 있을 터이다. 그것이 디자인의 이유에서, 낡았든 또는 새것이든의 문제가 아닌,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가 새삼 다가온다. 그래서 한동안 잊고 있더라도 이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행복한 트위드 재킷’에 대한 생각이 꼭 나게 된다. 과연 올해에는 찾아낼 수 있을까.

 

출처 : 패션포스트 / www.f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