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셔스패션'으로 더 빛난 아카데미 시상식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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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으나 메시지로 가득했던 아카데미​

메시지가 있거나 의식이 있거나 

컨셔스패션의 진화


 

최신 유행을 따르거나 혹은 글래머러스하거나 아름다워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세상이 됐다. 환경, 인종, 여성문제 등 유난히 정치적 메시지로 뜨거웠던 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지속 가능성, 친환경의 구호는 단연 두드러졌다.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감격을 안겨 준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이라는 소식과 함께 주요 기사에서는 제인 폰다가 입고 나온 붉은색 드레스에 주목했다. 

이날 제인 폰다는 반짝이는 붉은색 비즈 장식이 달리고 안쪽이 투명하게 비치는 엘리 사브의 맞춤 드레스를 입었다. 82세 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우아한 여배우의 기품을 드러낸 드레스였다. 

하지만 이날 특히 이 드레스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6년 전인 2014년 5월 14일 프랑스에서 열렸던 칸 영화제에서 그녀가 입었던 것과 같은 드레스였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영화제의 레드 카펫은 그야말로 스타일의 각축장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서든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해서든 모든 배우들은 최선을 다해 최고의 순간을 빛낼 드레스를 고른다. 대부분 현존하는 최고 디자이너의 작품이라 불리는 고가의 오뜨꾸뛰르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클러치나 목걸이 등의 장신구로 스타임을 보여준다. 

이런 큰 무대에 서는 배우가 몇 년 전 입었던 드레스를 다시 입고 나오다니 그야말로 뉴스거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 이유가 ‘더는 쇼핑을 하지 않겠다’는 배우의 소신에 따른 것이라 더욱 화제가 됐다. 

 

패션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식 있는 스타들 

이날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제인 폰다와 뜻을 같이한 이들이 많았다. 이번 레드 카펫을 두고 ‘그린 카펫’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모두 붉은색 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배우들은 각자 저마다의 방법으로 환경 보호를 실천했다. 

영화 ‘조커’로 누구보다 바쁜 연말을 보냈던 배우 와킨 피닉스는 연말과 연초 시상식 시즌 내내 같은 턱시도 한 벌로 등장했다. 지속 가능한 재료로 옷을 제작하는 대표적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의 검은색 턱시도를 입고 골든글로브 시상식부터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미국배우조합(SAG) 시상식, 영국영화TV예술아카데미(BAFTA) 시상식, 그리고 지난 9일 아카데미에 이르기까지 무려 5번의 시상식에 참석했던 것. 

‘스텔라 매카트니’는 동물 가죽이나 모피, 깃털을 사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지난 2019 가을겨울 전체 컬렉션의 70% 이상을 유기농 면과 재활용 폴리에스터, 에코닐 등의 친환경 소재로 제작한 브랜드다. 

와킨 피닉스는 평소 환경 운동가, 동물 운동가를 자처하며 엄격한 채식주의자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이날 남우주연상을 받은 와킨 피닉스는 “우리는 자연과 떨어져 있으면서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며 “우리가 사랑과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면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수상 소감을 남겼다. 

그 전에 열렸던 영국 아카데미에서도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그는 사회자의 인종차별적 조크에 시종일관 못마땅한 표정이더니 결국 수상소감에서 “유색인은 이곳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분명한 메시지가 전해진 것 같다. 자격이 있는 수많은 동료 배우들이 이같은 영광을 갖지 못했다”며 “영화 업계의 전반적인 인종차별을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해 시상식에 참석한 동료 배우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자신이 입었던 드레스는 아니지만, 신제품이 아닌 빈티지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을 밟은 스타들도 많았다. 배우 마고 로비는 빈티지 샤넬 드레스를, 모델 릴리 앨드리지는 빈티지 랄프 로렌 드레스를, 아담 드라이버의 부인 조안터커는 빈티지 오스카 드 라 렌타 드레스를 입었다. 

드레스의 일부만 재활용한 스타도 있다. 영화 ‘작은 아씨들’의 시얼사로넌은 지난 2일 열린 영국영화TV예술아카데미(BAFTA)에서 입었던 검은색 구찌 드레스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를 활용해 이번 아카데미 드레스를 만들었다. 

새 드레스지만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드레스로 멋을 낸 스타도 있다. 케이틀린 디버는 친환경 실크 새틴으로 만든 붉은 드레스를 선택했다. 레아 세이두 역시 유기농 실크와 친환경 텐셀로 만들어진 흰색 드레스를 입었다. 

일반적인 턱시도가 아닌 바람막이 점퍼와 트랙 팬츠로 색다른 시상식 패션을 선보인 티모시 샬라메도 친환경 레드카펫 행렬에 발을 맞췄다.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이나 어망, 섬유 폐기물을 수거해 재활용한 재생 나일론으로 만들어진 프라다 의상이다. 

한편 드레스 재활용 행렬은 아카데미 시상식 후 열리는 베니티페어 주최 행사에서도 계속됐다. 배우 엘리자베스 뱅크스는 2004년 같은 베니티페어 행사에서 입었던 베즐리 미슈카의 붉은색 드레스를 똑같이 입고 등장했다. 킴 카다시안 역시 과거 한 번 입었던 적이 있는 알렉산더 맥퀸의 2003년 드레스를 입고 행사에 참석했다. 

 

수직상승중인 국내 중고시장

지속가능한 패션과 관련해 새 옷을 구입하기보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입자’는 아나바다 운동이 우리나라에서도 전개된 바 있다. 세계적으로 에콜로지 열풍이 거셌던 90년대 이야기다.

다행히 최근에는 뉴트로 열풍과 빈티지 유행에 힘입어 중고 의상 거래도 확산되고 있다. 지역 주민간의 거래인 동네 장터 개념 ‘당근마켓’은 한 동네에서만 한 달에 수 십 억 원의 물건들이 거래될 만큼 인기다. ‘중고나라’나 ‘번개장터’ 등의 개인 간 거래 사이트에서도 중고 의상은 물론 모자나 가방, 벨트 등의 패션 아이템들이 활발하게 거래된다.

‘구구스’ ‘리본즈 코리아’ ‘고이비토’ 등의 명품 중고숍은 확장일로에 있으며 ‘구구스’와 ‘고이비토’ 등은 온라인은 물론 전국에 매장을 두고 온?오프라인 양방향으로 소비자들과 만나고 있다. 이들보다는 비교적 소규모이나 ‘빈타제’나 ‘레트로 인’ 등의 온라인 기반 구제 쇼핑몰도 최근 인기 상승 중이며 소규모 명품 대여점 등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패션 어패럴 메이커에서도 이런 추세에 발맞춰 윤리적 소비와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해 리사이클 캠페인을 진행하거나 소재와 제조공정에서 친환경적으로 생산된 컨셔스 제품을 추시하는 등 그린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 세계적으로 150개 패션 브랜드들이 G7정상회의 패션협약에 서명했으며 이로써 기후변화에 대한 노력, 이를테면 온실가스 감소, 플라스틱 사용 금지, 생태계 복구, 해양 보호 등에 협조할 것을 공개 선언했다.

2020년은 그 어느 때보다 패션업계가 앞장서서 환경보호를 위해 나서는 원년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 오염과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벗기 힘들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출처 : 패션포스트 / www.f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