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우리가 특별히 잘못한 게 없는데도 대륙의 문명이 급격하게 변했을 때, 항상 위기가 옵니다. 한반도에서 오순도순 청동기 문명을 멀쩡히 누리며 살고 있는데, 대륙에서 철기병들이 내려오면 문명의 교체가 시작되는 것과 같죠. 그때 우리는 철기의 엄청난 위력 앞에 절망과 고통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포노사피엔스. 저자 최재붕(2019) 본문 중에서>
스마트 폰이 낳은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
태초에 하나님이 호모 사피엔스를 창조했다면, 스티브 잡스는 포노 사피엔스를 창조해냈다고 합니다. 스마트폰을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여기는 인류, 즉 밀레니얼과 Z세대라 불리는 포노 사피엔스. 이들은 불과 10년 사이 엄청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촉발시켰고, 이로 말미암아 인류 사회는 거대한 근간의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니 블록체인과 같은 기술의 변화와 더불어, 시장 생태계의 중심에 등장한 ‘신인류’로 인해 전 세계 비즈니스 질서와 자본의 무게가 재편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어느 시대든 세대 론이 부상하고 확산되는 메커즘 가운데 광고가 있었습니다. 광고 마케팅을 위해 신세대의 라이프스타일, 소비패턴, 구매행태와 선호도를 예의 주시하고 사회의 트렌드를 재빨리 읽어내고 활용해야하기 때문이죠. 그런 맥락에서 돌이켜보면 문화에 대한 관심과 문화담론의 부상 중 가장 영향력 있었던 것은 1990년대의 ‘신세대론’일 것입니다.
당시 신세대의 모습을 제일 먼저 선보인 것은 역시나 광고였고,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영상기법이었습니다. 소위 ‘다양화, 개인화, 탈 대중화’라는 흐름과 함께 기존의 전통적인 광고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죠.
특히 ‘나’를 강조하는 광고가 많았습니다. ‘나는 나’라는 광고카피로 유명한 톰보이가 최근 그 당시 광고 캠페인의 아카이빙 전시를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죠. 바로 이들의 자녀들이 바로 지금의 포노사피엔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명의 교체가 일어나는, 바야흐로 ‘혁명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Belin means clubs?”
얼마 전 지역문화에 대한 연구를 위해 베를린을 방문한 한국의 국제학 교수님에게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입니다. 50대 교수에게 가볼만 한 곳으로 모든 사람들이 추천한 곳이 클럽 아니면 클럽 많은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교수님은 아마 적잖이 당황하셨을 것입니다.
DIY 문화운동으로 재생된 베를린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독일 전역, 그 중에서도 베를린에서 울려 퍼지던 음악은 클래식 악기로 연주되는 서양 고전음악의 전형이었습니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이 주도적 역할을 해오던 베를린 음악의 이면에는 현재 가장 동시대적인 사운드라고 할 수 있는 일렉트로닉 뮤직이 왕성하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 DJ와 뮤직 애호가들의 성지로 불리는 베를린에 이처럼 다양한 음악이 공존할 수 있었던 건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부터 시작합니다.
동서를 가로지르던 장벽이 무너지자 동베를린에는 소유주가 불분명한 공간이 많아졌는데 이를 관리하는 책임자나 단체도 없었습니다. 이때 주로 거리 아티스트(squatter)들이 빈 건물을 무단 점거하는 일명 ‘스쾃’ 행위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빈 건물을 무단 점거해 만든 클럽
이들은 이 건물들을 사회적 메시지를 표출한 현란한 그래피티와 함께 작업실을 차리고 전시를 하는 등 점차 대안문화공간으로 발전시켜갔습니다.
지속적인 추방압박 속에서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 버티기를 반복하며 결국 허가를 받아지역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이 된 곳도 있습니다. 처음 방문한 여행객이라도 거리 분위기만으로 동베를린인지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거리 특유의 정서가 느껴집니다.
당시 성행하던 ‘트레조’라는 클럽도 이와 같이 공간을 스쾃의 행위로 무단 점거하면서 시작된 클럽이라고 합니다. 이 혼란은 베를린의 음악 뿐 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문화 예술이 더욱 다양하게 발전하는 뜻밖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젊은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옛 규칙을 깨고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가자는 다짐은 이 혼란 속에서 내 삶을 스스로 디자인하겠다는 DIY 문화운동으로 이어져갔습니다. 베를린에서 만난 어느 DJ가 베를린의 클럽 신을 ‘스무 살 대학생과 예순 살 노인이 함께 파티를 하는 곳’으로 정의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베를린! 베를린! 너의 심장은 벽을 모른다”
길거리를 지나가다 종종 마주치던 그라피티의 메시지입니다. 장벽은 무너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실제로 무너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대간 혹은 문화적 갈등을 편견이 아닌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노력해온 베를린은 다른 도시는 갖지 못한 개방성을 지닌 곳으로 변모해갔습니다.
오갈 데 없어진 가난한 예술가들이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싹 틔워간 거리의 흔적들은 아직도 시큰하고 아련한 감정으로 남아있습니다.
자율’과 ‘연대’로 ‘연결’되는 포노사피엔스
최근 한국에서도 도시재생 성공사례로 관심이 쏠리고도 있는 베를린 거리들이 인위적인 건물재생과 겉만 그럴싸한 공간과는 공기가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 안에는 유기적으로 콘텐츠를 자생시킬 수 있도록 개개인으로 구성된 공동체 즉,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40여 년 전 불법으로 지어진 중림창고가 ‘서울로7017 주변 도시재생사업’을 위한 앵커 시설 중 하나로 리뉴얼 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도시재생사회협동조합 CRC와 어반 스페이스오디세이 USO가 함께 만든 이 공간은 여타 다른 도시재생 사업과는 다른 공기가 느껴집니다.
아레나 옴므 前 편집장이자 심야살롱을 진행했던 박지호 편집장과 동시대적인 도시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어반 북스팀이 기획한 USO는 공간에 대한 관점부터 달리했습니다. 도시를 기반으로 공간을 캔버스 삼아 각종 콘텐츠를 매거진처럼 협업 큐레이팅 한다는 것인데요, 매거진을 1P(페이지) 기준이라 한다면 공간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1PY(1평) 개념으로 바라본 것이지요.
이에 앞서 작년 초 도산공원에 오픈한 나우하우스도 공간에 대한 관점부터 다르게 시작했습니다. 나우매거진에 이은 NAU의 두 번째 아트&컬쳐 프로젝트로 패션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 혹은 복합문화공간을 탈피하여 열린 공간과 개방된 거리문화를 창조하는 ‘문화공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의 아티스트 레이블인 ‘팀 바이럴스’와 협업한 이 공간은 다음 세대를 위한 작고 다양한 이야기를 협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두 공간 모두 주목 한 것은 비슷한 취향과 세계관을 가진 이들과의 자율적 연대를 통한 연결입니다.
이는 기술의 혁명을 타고 타인과의 주요 연결 공간이 되 버린 소셜 미디어가 있었기 때문에 시청각화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안에서 우린 모두 각자의 페르소나가 존재하고 이는 개인, 브랜드, 공간을 넘나들기 때문입니다.
2020년의 트렌드를 예상하고 분석하는 책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키워드가 바로 이 느슨한 연대입니다. 사실 연대는 1990년대 후반 정치·경제권에서 기존 협력 시스템이나 제도가 지닌 물리적인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대안적 방식 혹은 참여 형태를 제안하는 방법의 하나로 쓰였던 표현입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느슨한 연대
그러나 그 당시의 ‘끈끈한 연대’의 주어가 ‘우리’였다면 ‘느슨한 연대’의 주어는 ‘개인’입니다. 끈끈한 연대의 암묵적 조건은 ‘대의를 위한 나의 희생’이라면 느슨한 연대는 ‘훼손되지 않는 나의 감정’이기도 합니다.
이는 학교와 직장 등 소속감에 묶일 필요도 없고, 승진이나 결혼, 주식과 같은 대화가 아닌 공통된 취향과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 살롱 문화가 확대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도래 했고, 문명의 교체로 인한 혁명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인간에게 연대는 생존입니다. 하루하루가 급변할수록 우리가 왜, 어떤 방식으로 포노사피엔스들과의 연대를 통한 연결을 할 수 있을 것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은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출처 : 패션포스트 / www.fpost.co.kr